일부 특별한 소수는 아픔을 경험한 이후 더 넓은 세계에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느낀다.
이런 이들은 단순히 회복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개인적 비극을 인생을 변화시키는 토대로 이용해 그 비극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슈퍼서바이버’라고 부른다. 그들은 육체적 심리적 외상을 겪은 후 자신의 삶에 대변혁을 일으킨다. 그들은 참고 견디는 와중에도 이 고통을 바꾸고 초월한다. 그들은 말한다. 세상의 시련이란 흐트러진 인생의 조각을 다시 맞추기 위한 대격동의 시간일 뿐이라고. -데이비드 필드먼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통을 겪고 낙담하거나 끝없이 추락할 수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우리의 삶을 살짝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길어야 100년 정도이다. 긴 시간의 흐름에 비추어 보면 짧은 시간이기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삶인 것이다. 여기 아주 큰 아픔을 겪었음에도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 삶을 살아가시는 김상진 집사와 그의 부인을 취재했다.
장고항에서 태어나 살아온 김상진 씨(61세) 어릴 적 7남매의 화목한 가정 아래서 자랐다. 어릴 적 일찍 여위었던 그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항상 형제들 간의 우애를 중시하였고 자식 하나하나를 귀하게 키우는 분이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형제들과 단 한 번도 다투거나 사이가 안 좋았던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형제들이 다투고 싸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나누고 베푸는 덕목을 가장 중시하셨죠.”
그렇게 자라온 김상진씨는 1978년도에 부모님들 간의 중매로 당시 다섯 살 어렸던 지금의 사모님 정제순씨 (56세)와 결혼하게 되었다. 당시 김상진씨 의 성실함과 부지런한 모습에 정제순씨 집안을 포함한 양가 부모님은 모두 결혼을 흔쾌히 허락하셨다고 한다. 당시부터 심성이 착했던 김상진씨는 주변 여러 사람들의 빚 보증을 서달란 요구에도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서로 도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덕목도 그렇고 제 신념 역시 열심히 살아 베풀자 입니다.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건데 남의 돈 떼먹으려고 하는 사람들 잘 되는걸 본적이 없고 베풀며 사는 사람들은 항상 행복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김상진씨는 2001년도 어느 날 사고로 인생에 있어 크나큰 좌절을 겪게 된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도중 머리위로 쇠로 된 커다란 폼이 떨어져 의식을 잃게 된 것이다. 목뼈가 부러지고 중추 신경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김상진씨는 목에 인조 뼈를 장착해야 했고 당시부터 1년 8개월 정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거의 죽음을 경험했죠.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몸을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고 병원에만 누워있었으니까요. 정말 이대로 끝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옆에서 저를 지켜주는 안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김상진씨의 와이프 정제순씨는 매일 그가 다시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그를 정성껏 돌봤다고 한다. 그런 사랑이 있어서 였을까. 김상진씨는 사고후 근 2년정도 뒤 기적적으로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남편을 돌본 것은 제가 맞지만, 남편이 몸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강인한 의지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내조하며 거들기만 했을 뿐인걸요. 남편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휠체어를 타야만 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 지팡이를 붙잡고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의 김상진씨는 초등학생 아이정도의 힘이지만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기적적인 의지력이 그를 일으킨 것이다.
“매일매일 긍정적인 마인드로 저 스스로를 돌봤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일어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옆에서 포기하지 않고 저를 돌봐준 제 와이프가 정말 자랑스러울 뿐이죠.(웃음)”
그렇게 농사를 시작한 김상진씨. 지금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3000평짜리 영농지를 4만평 가까이 늘려 농사를 짓고 계신다고 한다. 물론 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남자 힘으로 들어야 할 비료나 농약같은 경우는 그의 와이프가 들고 도와주지만 정말 대단한 의지력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워낙 베풀며 선하게 살아왔던 그이기에 주변 분들도 많이 거들어 준다고 한다. 이제는 매일매일 착실히 영농일지까지 써가며 살아가는 김상진씨. 그 성실함을 인정받아 2013년 농입기술센터에서는 그에게 우수사례로 동상을 수여했다고 한다.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그저 힘 닿는데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또한 남은 일생 동안 저의 사랑스러운 형제들과 서로서로 베풀며 돕고 살고 싶습니다. 세상이 많이 발전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진 만큼 서로 더불어 웃고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남들과 같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한 시간 늦게 일을 끝내야만 한다는 김상진씨다. 사회에는 더더욱 힘든 사람이 많겠지만 많은 분들이 이 진정한 슈퍼 서바이버 김상진씨를 보며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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