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화 (편집위원, 민속지리학 박사, 충청남도문화재전문위원, (사)당진향토문화연구소장)

▲ 송악면 가학리, 영천리 경계를 이루는 오룡산 전경
오룡산(五龍山)은 송악면 가학리, 영천리 경계에 있는 높이 50m의 산으로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옛부터 명당터로 여겨 암자, 그리고 묘지터로 쓰여져 왔다.


▲ 영금절터의 기왓장들
오룡산(五龍山)은 송악면 가학리, 영천리 경계에 있는 높이 50m의 산으로 다섯 봉우리가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산은 높이는 낮지만 옛부터 명당터로 여겨 암자, 그리고 묘지터로 쓰여져 왔다.


이 오룡산을 중심으로 남·동측에는 영천리 1반인 영금절, 2반 산직말이 자리하고 그 너머 오룡산 북측으로 가학리 동쪽말이 자리하고 있다. 오룡산 남측 영천리 긴 골짝 맨 윗자락에 옛날 ‘영금절’이라는 절이 있었다. 그 이름을 따서 현재 마을명이 ‘영금절’이며 16호가 살고 있다.

오룡산에 밀양박씨 비촌파 묘지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안쪽 골망이 영금절터이다. 절터에는 주춧돌, 기왓장, 절 샘 등의 흔적이 남아 있고, 오룡산 북측으로 옛 대성사 절터에 조계종 서원사가, 그리고 그 옆에 대성사라는 암자가 50여 년 전부터 터를 잡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송악면 반촌리, 기지시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 산에는 아래와 같은 애절한 전설이 옛날부터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오룡산 산삼

▲ 영금절터의 샘 모습
옛날 약초를 캐서 생계를 이어가는 한 부부가 약초를 캐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며 일정한 집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처음 강원도 태백산맥 깊은 산속에서 생활을 해 왔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산짐승이 갑자기 많아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시작하자 산짐승을 피해서 서해안 지방의 가야산줄기로 찾아드는 중이었다.


식구래야 내외뿐이라 크게 부담될 것도 없었으며 간혹 인삼이라도 몇 뿌리 캐면 그것으로 얼마 동안은 여유 있게 살았다. 약초나 인삼을 캐지 못할 때에는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였다. 이들 내외는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오룡산에 이르러 산모양이 신기해서 틀림없이 산삼이 묻혀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곳에 오면서부터 산삼을 캐지 못해 굶는 날이 많았는데 며칠 동안은 인심 좋은 곳이라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먹었다. 어느 날 그들은 오룡산 한쪽 산기슭에서부터 산삼을 찾아 올라가고 있었다. 오룡산 계곡은 태백산 계곡처럼 나뭇잎이 울창했다. 계곡이 보이자


“여보, 여기서 쉬어가요.”
하고 아내가 먼저 이렇게 말하자 남편도 따라 앉았다. 앞에 보이는 경치가 더없이 좋았다. 이러한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니 속세에서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가소롭게 여겨졌다. 잠시 후 그들은 다시 산삼을 찾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옛 대성사터에 2003년 신축된 서원사 모습
그들이 산 중턱을 오르고 있을 때 하얀 백사가 그들 옆을 재빨리 지나갔다.
“여보, 여기 백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이쪽에 무엇인가 있을 거예요.”


하고 건너편에서 약초를 찾던 아내가 소리쳤다. 원래 산삼을 캐려면 먼저 백사가 있는지 알아보라는 말이 있는데 산삼 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먹고 자라는 뱀은 백사가 된다고 한다.


그들이 주위의 땅을 뒤적이고 있을 때 백사 두어 마리가 다시 흩어지고 해서 뒤로 물러서려는데 그들 앞에 한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그대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이 산에는 무엇 하러 들어왔소.”


하고 노인이 묻자, 부부들은
“산짐승들을 피해 강원도에서 이곳으로 약초를 캐러 왔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이 산의 물건은 아무나 가져갈 수가 없소. 이 산 밑에는 다섯 마리의 용이 살고 있어서 풀잎하나라도 건드리면 큰일이지.”
하고는 지팡이를 짚으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하지만 산삼에 온 정신이 팔린 그들은 노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숲을 헤치고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산삼이 있었다. 남편은
“여보, 산삼이야, 산삼!”


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소리치며 망태기에서 호미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흙을 파 나갔다.
“여보, 산삼에 호미자국이 나면 안 돼.”
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산삼 밑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산삼뿌리를 걷어 올리려는데 흙에서 붉은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들 부부는 놀라서 손을 잠시 멈추고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돌아보니 아까 보았던 노인이 노기 띤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오룡산에 있는 산신령이다. 이 산에 있는 풀잎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너희들은 내 말을 어겼는고. 내 말을 어겼기에 너희들에게 큰 벌을 내리리라.”
하고 노인이 말했다.


▲ 영금절 동네 전경
그들 부부는 두려움에 떨며 무릎을 꿇고 앉아 산신령에게 사죄하기 시작했다. 산신령은 노기를 거두며 말하기를


“옛부터 산삼을 캐려면 먼저 제사를 지내야 하는 법인데 그것도 모르냐? 예부터 산삼은 어디에나 있으나 함부로 캐는 것이 아니다. 지성과 성의를 다해야 된다. 오늘부터 20년 동안 산삼에다 물을 주면 살 수가 있을 것이다.”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곳에 절을 짓고 20년 동안 매일같이 산삼에 물을 길어다 주면서 살았다. 또 이곳에 정착한 후 절주변의 땅을 일구어서 여러 가지 채소와 잡곡을 심었다.


처음에는 일이 서툴러서 무척 고생스러웠지만 차차 형편이 나아졌다. 산삼은 물을 줄수록 신기하게도 점점 자랐다. 그리하여 마침내 산삼은 옆에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끼 산삼에도 열심히 물을 주어서 어느덧 20년 후에는 산삼이 넓게 퍼졌다. 원래 산삼은 번지지 않는 것인데 신기할 정도로 넓게 퍼졌다.

 
어느 해 임금님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왕실에서 산삼을 구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팔도강산에 보냈다. 이런 소식을 들은 그들 부부는 산삼 밭이 들키지 않을까 큰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그날 밤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이제는 산삼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
하고는 웃으며 사라졌다. 그러자 그들 부부는 산삼을 캐들고 왕실로 가서 임금님의 병을 고쳐 드리고 후한 상을 받고 벼슬도 얻어 편안하게 오랫동안 살다 죽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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