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읍 원당리 ‘느구엔티다오’씨(한지민)

▲ 2003년 12월 결혼한 느구엔티다오씨는 두 아들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내고 있다.


‘느구엔티다오’란 이름은 베트남에서 매화꽃이란다. 이렇듯 어여쁜 이름의 여인을 한국인은 ‘베트남 여자’라며 수군댔다. 타국에서의 결혼생활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2003년 12월 결혼한 느구엔티다오(26)씨는 지난 5일 가천문화재단에서 주최한「다문화가정 효부상」을 당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현재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며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시아주버니의 병수발까지 하는 등 효부로서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초 한국국적을 취득하여 ‘한지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긴 했지만, 고국에서 많이 불리고 친숙할 ‘느구엔티다오’란 이름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손하경 기자 sarang418@hanmail.net

 



▲ 「다문화가정 효부상」
아무도 못 말리는 배움에 대한 ‘욕심’

처음 느구엔티다오씨 집을 찾았을 때 순간 여느 한국의 가정을 찾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환한 웃음을 보이며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고는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 과일과 음료를 내어 온다.
이미 한국의 예절에 익숙해져 있었고, 의사소통에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한국의 며느리가 되어 있다.


“엄마! 나와보세요” 라며 친근감 섞인 어조로 시어머니를 부른다.
현관 옆으로 간이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고 20년간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시아주버니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외에 건설근로자인 남편, 네 살과 두 살 난 장난꾸러기 아들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의 울타리를 꾸려내고 있다.


“2006년도에 당진에 오게 됐어요. 남편과 단둘이 살았을 때는 온종일 큰아이와 씨름하며 무척 힘들고 쓸쓸했어요. 지금은 엄마, 아주버니도 계셔서 외롭지 않고 너무 좋아요. 무엇보다 제가 한국말이 서툴러 아이들 언어가 제일 걱정되었어요.

엄마가 아이들을 너무 예뻐하시고 잘 돌봐주세요. 그리고 시장에 가시면 제가 좋아하는 떡도 사오시고요. 그렇지만 화나시면 많이 많이 무서워요(웃음)”


이러한 어려운 생활여건 속에서도 느구엔티다오씨의 배움에 대한 욕심은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문화원에서 한국말과 한글을 배우며, 여러 문화체험도 하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틈틈이 요리학원을 다니며 한국요리 배우기에도 적극적이다. 이에 대해 옆에 있던 시아주버니가 말문을 열었다.


“제수씨가 내성적이고 조용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욕심은 상당히 많아요. 운전면허까지도 취득할 정도니까요. 항상 어머니께 물으면서 한국요리를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요리학원까지 다녀서 지금은 못하는 음식이 없어요. 또 아주 맛있게 잘해요.

여느 한국며느리 보다도 더 잘할 겁니다. 제가 제수씨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 늘 고맙고, 타국에서의 결혼생활이 쉽지 않을 텐데도 꿋꿋하게 잘 적응하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습니다”


가녀린 몸으로 남편의 뒷바라지와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시어머니를 모시며 시아주버니의 병수발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올해 초 어렵게 ‘한지민’이라는 예쁜 한국이름도 갖게 되었다.


“저도 한국말과 한글을 지금도 배우고 있지만 발음이 어려워요. 특히 ‘ㄹ'과 ‘ㅕ’발음이 힘들어요. 한국이름을 얻기까지는 시아주버니 도움이 컸어요.

국적취득에 관한 절차와 서류를 작성한다는 것이 제가 하기에는 무척 복잡하고 힘들어요. 아주버니가 몸도 불편하신데 전동휠체어를 타시고, 저와 같이 일일이 기관을 다니시며 서류제출을 해주셨어요.
이번 효부상을 탄 것도 아주버니가 서류준비며 모두 도와주셨어요. 아주버니께 너무 감사해요”


▲ 시어머니를 모시며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시아주버니 병수발까지 하는 등 효부로서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걱정과 불안’은 서서히 ‘믿음과 사랑’으로 변하여

결혼 초 가장 힘든 점은 ‘의사소통’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싫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말이 통하지 않아서 너무 답답했어요. 무슨 이유로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러다 보니 엄마가 화내시면 전 서럽고... 농담삼아 한 말도 진담인 줄 알고 무척 서운했어요.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어려워요. 그리고 남편과 시장을 가면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베트남 베트남’ 하며 수군거렸어요. 꼭 동물원의 동물이 된 느낌이 들어서 정말 싫었어요”


느구엔티다오씨의 고향은 베트남 호치민이다. 20여 년간 자라온 곳을 뒤로한 채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첫 느낌은 춥고 무서웠다고 한다.


“특히 명절 때가 되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났어요. 베트남에서는 명절 때 전통 빵(Banh Trurg Thu)과 월남쌈을 즐겨 해먹어요. 제가 좋아했던 음식은 월남쌈과 쌀국수예요. 처음에 결혼하고 남편 하나만 믿고 한국에 온 느낌은 무척 두렵고 무서웠어요.

그렇지만 제가 열심히 살아서 시댁어른을 정성껏 모시고 사랑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서서히 걱정과 불안이 믿음과 사랑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어요. 몇 년 전에는 남편과 시댁식구의 배려로 건설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모셔와 남편회사에 세 달간 일하신 적도 있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무척 오시고 싶어 하지만, 체류기간 등의 문제로 3개월밖에 계실 수가 없어요. 여건이 되어서 친정부모님이 오래 오래 한국에 머물러 계셨으면 좋겠어요”
다문화가정에 대한 안좋은 소식을 방송매체 등에서 접하게 되면 느구엔티다오씨는 왠지 모를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한다.


“TV나 주변에서 ‘누구 며느리 도망갔네’ 하고 그러면 시댁어른들 표정을 슬그머니 쳐다봐요. 그러면 전 ‘엄마가 잘해주시고 남편이 저를 위해 술담배도 끊고 사랑하는 두 아들이 있는데 왜 도망가요’ 하면서 웃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표정이 안 좋거나 외출하고 조금만 늦게 와도 걱정하셨다고 해요(웃음). 한국남자는 표현력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불만이기는 하지만... 부부싸움 할 때는 남편이 항상 양보하고 화도 금방 풀어요. 가족이 이렇게 모여 산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아요”


이제 느구엔티다오씨에게 한국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문화와 언어차이를 극복하고 현재 강씨 일가의 며느리로서 당당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
그녀는 다른 이주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가끔씩 주변에서 안 좋은 소식을 접할 땐 마음이 아파요. 세상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 살든지, 열심히 좋게 살려고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남편과 시댁식구를 잘 만나서 비교적 고생을 덜 했지만... 외롭고 힘들수록 주위를 둘러보세요. 곁에 든든한 남편과 시댁어른들이 계세요. 결코 혼자가 아니고 한국의 며느리라는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결혼생활 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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