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이 없다는 말이 있다. 부끄러워서 남을 대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끄러워서 차마 내보일 낯이 없다는 것은, 실수나 과오로 부끄러운 짓을 범하고서 자신의 신중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반성과 사과를 담아서 하는 말이다. 부끄러운 것을 아는 사람이 정말로 부끄러워하면서 하는 말이다.


요즘 면목이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모모한 사람들이 뻔뻔한 얼굴을 들고 서서 아무 감정 없이 국민을 향해 이 말을 해댄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면목이 없다는 말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뿐으로 사실은 면목 없어 하지도 않는다.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애당초 부끄러워할 얼굴을 가지기나 했겠는가. 그러니 부끄러워할 자격도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들 가운데 “별 볼일 없는 시골양반”이 있다. 그리고 그 시골양반이 별 볼일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이가 있다. 이 철석같은 믿음을 가진 이가 별 볼일 없는 시골양반에게 별 볼일이 많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진작 주목을 했었더라면, 오늘날 이런 큰 망신을 당하며 국민에게 분노와 실망을 주게 되지 않았을 것을, 후회는 언제나 늦으니 유감일 뿐이다.


어째서 그동안 줄줄이 이어 내려온 대통령가의 문제점들을 보고도 반면교사로 삼지 못했던 것인가. 그 믿음이 너무 철석같아서인가, 설마 했던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호기 또는 오기 때문이었나.


이번 사건에서 국민은 자신은 자중하려 애썼으나 그러지 못한 대통령의 형을 보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실망과 분노가 크다. 바람에 흔들린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흔들어서 바람을 불러일으킨 나무를 보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특히, 그가 알선수재 했다는 돈으로 성인오락실을 공동운영했다니 참 해도 너무 하지 않았나 싶다. 적법하지 않은 더러운 돈으로는 역시 적법하지 않은 더러운 일을 해야 제격인가보다. 여기에서는 대통령 형으로서의 최소한의 명예도 자존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실추되는 전직대통령의 명예를 어찌해야 좋을지 요즈음 국민은 영 마음이 편치를 못하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전직대통령을 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는 국민정서에 동정이나 연민의 여지란 없다.


면목 없어하는 쪽은 오히려 우리 국민이다. 그 무치를 어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겠는가. 차마 부끄러워서 그 무치를 대할 낯이 없는 쪽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우리 국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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