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화
본지편집위원, 민속지리학 박사, 충청남도문화재전문위원, (사)당진향토문화연구소장

각 지역마다 선조들의 삶의 흔적에서 어떤 일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명, 산, 바위, 나무, 저수지 등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뿌리에는 역사적 사실들이 숨어 있고 잠들었던 조상들의 인생관, 종교관, 우주관 등이 묻어난다.

이 땅에서 살다간 선조들의 흔적들을 김추윤 교수의 지명유래와 전설, 인권환 교수의 구비문학대계 당진군편, 그리고 당진군지, 우강면지, 합덕읍지, 면천면지, 석문면지, 고대면지, 대호지면지 등과 본 필자가 그동안 채록한 자료를 토대로 구비문학 속에 전하는 당진군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의 흔적을 산, 인물, 바위 등 주제별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아미산은 면천면 죽동리와 송학리 그리고 순성면 성북리 경계에 있는 높이 약 350m의 당진군내 최고봉이다.


옛날에는 소이산(所伊山)이라고 불렀다가 후에 아미산(峨媚山)으로 산 이름이 바뀌었다. 아미산은 원래 중국 서남지방에 있는 중국불교의 4대 영장(靈場)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현재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으로 속인은 공안당국의 허가를 받아 등정할 수 있다.


옛날 중국 아미산에 종두를 물리치는 신인(神人)이 살고 있다고 하여 그것을 본 따 마마를 막기 위해서 그 지방에서 제일 높거나 마을의 진산을 아미산으로 개칭에서 두신(痘神)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당진에 아미산이 생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여기에는 아미산 용과 인접한 몽산의 지네에 얽힌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아미산 전설


먼 옛날 아미산에는 죄를 짓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제의 아들이 커다란 용으로 변하여 살고 있었고 인접한 몽산에는 수백 년 묵은 지네가 살고 있었다. 아미산에는 많은 꽃이 피었으나 이상하게도 몽산에는 피지 않았다. 그래서 봄이면 마을 사람들이 두견주를 빚기 위해서 아미산에 진달래꽃을 따러 자주 올라갔다.

산에는 뻐꾸기를 비롯하여 온갖 새가 지저귀고 각종 백화가 만발하여 술병을 차고 하루 종일 놀다가는 마을사람들이 많아졌다. 따라서 아미산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벼서 이곳에 사는 용과는 서로 얼굴을 대할 수는 없으나 친하게 되었다.


지금은 몽산의 산봉우리가 침식되어 뭉뚝하지만 옛날에는 뾰족해서 사람의 왕래가 없고 꽃도 피지 않아서 지네는 항상 불평을 하면서 사람을 해치곤 했다. 자기 마음이 곱지 못해 산에 꽃이 안 핀다는 것을 몰랐던 지네는 날이 갈수록 행패가 더욱 심해갔다.

마음씨 고운 아미산의 용은 지네의 행동이 괘씸해서 항시 벼르고 있었지만 싸움을 걸지는 않았다.
용은 산신령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늙은 사람으로 변하여 불쌍한 마을사람들을 도와주었다. 특히 마을 사람들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으면 용은 아미산에서 귀한 약초를 캐다가 그들을 치료하여 주면서 원죄를 씻고 하늘로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몽산에 있는 지네는 마음씨가 어찌나 나쁘고 심술궂은지 나쁜 일만 골라서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밭일을 하다가 들 가운데 소를 매어 놓고 가면 지네가 독을 뿜어 죽이는가 하면 농작물도 망쳐놓고 또한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해를 끼치기에 몽산 근처에는 사람들이 얼씬도 못했다.


▲ 아미산 산상봉의 신선바위
하루는 아미산의 용이 산정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므로 용은 비명소리가 들리는 몽산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지네가 나물을 캐던 처녀를 붙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이 한번 크게 으르렁댔더니 지네가 처녀를 버리고 용에게 덤벼들어 크게 한번 싸우려했으나 용은 다시 생각하고 꾹 참았다.


지네와 크게 싸움이 벌어질 뻔 했던 다음 날이었다. 용이 산봉우리에 올라와서 어슴푸레 잠이 들었다.
그때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용아! 잘 들어라. 여기 고을이 편해지려면 앞산의 지네를 없애버려야 한다. 네가 지네를 해치우고 고을을 편안하게 하면 곧 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다. 신령의 이 말에 용은 언뜻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너는 할 수 있다.”하고 신령이 용기를 주었다. 용은 지네를 해치우기로 결심을 하였다. 용은 그때부터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지네를 잡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몇 날을 연구하던 끝에 묘안을 생각해냈다.
아미산 아래의 마을에 할머니와 딸이 살고 있었다. 집이 매우 가난하였는데 딸이 앓고 있었다. 지네의 독을 쏘인 다음부터 앓고 있다는 것을 듣고 용은 사람으로 변하여 약을 구해 그 딸을 낫게 했다. 딸을 살려주었다고 고마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할머니에게 자기의 부탁을 하나 들어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무엇이냐고 묻자 용은 “할머니, 쑥을 두어 지게만 구해서 아미산 근처에 놓았다가 바람이 몽산 쪽으로 불면 쑥을 태워 주십시오.”


할머니는 딸을 낫게 해준 용이 고마워서 쾌히 승낙하고 들에 나가서 쑥을 베어 아미산 아래 쌓아 놓았다. 드디어 바람이 몽산 쪽으로 불자 할머니는 쑥에 불을 붙였다. 온천지를 진동시키는 쑥 냄새는 차츰 몽산 쪽으로 진하게 옮겨 갔다.


한참 후에 몽산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며 산등성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계속 쑥을 태우니 쑥 냄새가 더욱 독해져 천지가 떠나갈 듯한 괴성이 들렸다.


그러면서 몽산 봉우리가 뚝 잘려졌다. 그 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았다가 5리 밖에 쿵하고 떨어졌다.
마침내 지네가 쑥내음에 괴로워 하다가 몸부림치며 죽은 것이다. 잠시 후에 푸른 은하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용은 은하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때부터 몽산 봉우리가 잘려 나가 몽둑한 모습이고 몽산의 잘린 봉우리는 지금도 면천면 성상리 들 가운데 떨어져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봉우리가 잘린 몽산은 그 후부터 몽둥산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전설이 전하는 것에서 아미산을 복지겸의 딸이 백일기도를 하던 신성한 산으로, 몽산은 여단, 성황사, 기우제단 등이 있는 산성으로 인간 공간으로 생각해 오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이 아미산 정상에 4평 남짓한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미산의 절경을 즐기며 등산하는 등산객에게 휴게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되어서도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당진군사(1936)》에 보면 옛날에 이 바위에서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풍류나 오락을 즐겼다하여 신선바위라고 불렀다.


이 신선바위에서 내려다보면 당진군 일원이 눈 안에 들어오고 멀리는 아산만을 경계로 경기도 일원까지 바라볼 수 있다.
면천의 은행나무 전설에도 관계있는 고려의 공신 복지겸이 어렸을 때 나무를 하려 아미산에 자주 가곤 하였다.


복지겸이 17살 때 아미산에 갔다가 신선바위에서 바둑 두는 신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복지겸 입니다.”
“똑똑하게 생겼구나. 공부는 많이 하고 있느냐?”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 매일 하고 있습니다.”
“응, 그래. 이번에 서울로 올라가 과거시험을 보면 분명히 합격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후 복지겸은 신선의 말대로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 과거시험에 응시하였다.


그랬더니 정말 과거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후 복지겸은 고려의 개국 일등공신으로서 지혜롭게 나라 일을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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