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리 일원 유예관 농부와 가족들의 모내기 첫 작업
필수가 된 기계장비와 외국인 노동자 등 변화된 농가

농사의 시작  어린 모룰 키운 모판을 논에 배치하고 있는 유예관(75세)씨의 모습. 이 어린 모들은 약 일주일간 뿌리 내리기를 기다리고, 이양기를 통해 논에 심어진다. ▶관련기사 3면 ⓒ고정호
농사의 시작 어린 모룰 키운 모판을 논에 배치하고 있는 유예관(75세)씨의 모습. 이 어린 모들은 약 일주일간 뿌리 내리기를 기다리고, 이양기를 통해 논에 심어진다. ⓒ고정호

[당진신문=고정호 기자] 봄이 되면 농가는 매우 바빠진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못자리에서 기른 어린 모를 논에 옮겨 심는 모내기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모내기 철에는 아궁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는 속담이 있다. 십시일반 일손을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유예관(75세) 농부 역시 마찬가지다. 당산리 일원에서 약 5만평 넘는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모내기 작업에 온 가족들이 모였다. 작년부터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는 아내 이봉기(75세), 둘째 아들 유병의(50세), 셋째 사위 이태현(52세) 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지난 16일, 아침 9시부터 시작된 모내기의 첫 작업은 모판틀에 어린 모를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트랙터에 준비된 모판이동틀에, 모판들을 하나하나 끼워 넣기 시작했다. 직접 일손을 더해보니 물을 머금은 모판 안 흙 무게가 꽤 묵직했다. 양손에 하나씩, 약 30분 동안 모판을 옮기니,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어린 모들의 향긋한 풀 냄새는 좋았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더웠다.

당산리 일원에서 유예관 농부와 가족들이 모였다. 농번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모내기를 위해서 인데, 오는 6월 5일까지 총 7000개의 어린 모를 논에 옮겨 심어야 한다. 왼쪽부터 셋째 사위 이태현, 아내 이봉기, 둘째 아들 유병의. ⓒ고정호
당산리 일원에서 유예관 농부와 가족들이 모였다. 농번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모내기를 위해서 인데, 오는 6월 5일까지 총 7000개의 어린 모를 논에 옮겨 심어야 한다. 왼쪽부터 셋째 사위 이태현, 아내 이봉기, 둘째 아들 유병의. ⓒ고정호

호흡이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유예관 농부에게 힘들지 않냐고 질문하자 “평생 농사일을 해왔으니, 별 어려움은 없다”며 “이 어린 모들만 잘 심으면 농사 반은 해냈다는 말이 있다. 저희 같은 경우 6월 5일까지 7000개의 모판을 옮겨 심으면 모내기는 끝난다”라고 설명했다.

총 120개가 들어가는 모판틀 4개를 채우고 보니 벌써 10시 30분, 잠시 여유를 찾고 식사를 했다. 혹 올해 가뭄이 길어 논에 물을 대는 일에 문제없었는지 묻자 유예관 농부는 “그나마 당진의 경우 삽교천 등 담수가 풍부한 편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라고 답했다.

유예관 농부의 둘째 아들 유병의 씨는 아침부터 트랙터로 물 댄 논에 벼를 심을 수 있도록 흙을 잘게 부수고, 평탄하게 하는 논삶기를 했다. 유병의 씨는 10년 전부터 농사를 돕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운송업을 하다, 코로나와 기름값 부담 등으로 농사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은 것.

유병의 씨는 “이제 농사를 마음먹는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기계들이 하나같이 기본 억 단위니 살 엄두가 나겠나”라며 “인력도 용역을 통해 쓰는데,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의 경우 곤란한 경우도 종종 있다”라고 설명했다.

십시일반 아닌, 기계장비..품앗이는 이제 옛말

실제로 2023년 농사는 기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을 구성원이 협동하던 품앗이도 사라지고, 기계들과 용역 인력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특히 기계장비들의 높은 가격은 농가에 가장 큰 부담이다. 저마다 기능과 사양, 브랜드별 차이가 있으나, 트랙터와 콤바인의 경우 1억 이상, 이양기도 천차만별이다. 4000~7000만원 정도로 혹, 고장이라도 나면 모든 일이 중지돼, 금전적 부담과 한해 농사 일정도 빠듯해진다. 근래, 비료나 볍씨도 드론을 띄워 작업 하는데, 드론 가격도 1000~2000만원 선으로 경차 가격에 육박한다.

모판이동틀을 실은 트랙터 운전에 셋째사위 이태현(52세)씨가 나섰다. 트랙터가 꽉차는 좁은 농로길에서도 전혀 문제없었는데, 의외로 결혼 전까지 전혀 농사 경험이 없었다고 밝혔다. ⓒ고정호
모판이동틀을 실은 트랙터 운전에 셋째사위 이태현(52세)씨가 나섰다. 트랙터가 꽉차는 좁은 농로길에서도 전혀 문제없었는데, 의외로 결혼 전까지 전혀 농사 경험이 없었다고 밝혔다. ⓒ고정호

이런 기계장비가 없다면, 마을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한 마지기인 200평 기준, 트랙터 6만원, 이양기는 3만원, 콤바인은 6~7만원 정도의 품삯이 든다. 당연히 같은 시기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니 일정 맞추기도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 농가에서 돈이 모이면 가장 먼저 기계장비를 구매하게 된다.

또한, 농촌 인구가 줄어들다보니 외국인 근로자들로 마을 품앗이가 대체됐다. 대부분 농가에서 일손이 필요할 때, 용역으로 충당되고 있는데, 당진시 기준 약 10만원의 일당이 든다. 밥과 물, 간식도 따로 챙겨줘야 하고, 언어소통과 문화적 차이로 갈등이 일기도 한다. 

아들 유병의 씨는 “이제 대농이 아니면 농사일하기 쉽지 않다. 기계값과 필요한 일손도 매우 부족하고 비싼 편”이라며 “쌀 소비도 줄고, 지을 농부도 부족해지는데, 농사라는 산업이 앞으로도 전망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쪽에서 바람을 쐬며 휴식하던 아내 이봉기 씨에게 농사일은 좀 어떠냐는 질문에 “안 힘든 일이 어딨겠나. 그나마 돈이라도 좀 뭐더고 하면 괜찮은데, 기계 고치는 값에, 사람 쓰는 값도 만만찮아져서 남는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농사는 계속된다

식사를 마치고 모판을 가득 실은 트랙터 운전대를 셋째 사위 이태현 씨가 잡았다. 올해 52살로 결혼 전까지 농사 경험은 없었지만, 이제 농사 짓는 집안의 사위로서 능숙한 운전 실력을 뽐냈다.

소중한 어린 모판들을 한차례 다 옮기고 휴식하고 있다. 직접 체험해보니, 물 먹은 흙 무게가 제법 묵직했다. 모내기철에는 직접 볍씨를 뿌리는 직파농법과 모판에서 키운 어린모를 심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고정호
소중한 어린 모판들을 한차례 다 옮기고 휴식하고 있다. 직접 체험해보니, 물 먹은 흙 무게가 제법 묵직했다. 모내기철에는 직접 볍씨를 뿌리는 직파농법과 모판에서 키운 어린모를 심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고정호

비닐하우스에서 떠난 트랙터는 좁은 농로에 들어서,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뒤따르던 유예관 농부와 이봉기 씨는 능숙하게, 실수 없이 어린 모들을 논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논에 옮겨진 어린 모들은 일주일 정도 뿌리내리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 후 이양기로 논에 심어지고, 앞으로 제초와 병충해와 싸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잘 커진 모들은, 이삭을 피우고, 푸른 알곡이 가득 차 고개 숙이게 되면, 맛 좋은 쌀로 결실을 본다.

현재 당산리의 논 면적은 약 20만평이다. 예전이면 두 사람이 짓는 작은 규모라고 밝힌 유예관 농부는 “앞으로 농사짓는 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농사지을 사람이 있을까 싶다”며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고, 걱정이 크다. 쌀값이 물가에 맞게 올라서 숨통을 틔워줬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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