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억압에 노출된 이주 여성들
폭력과 억압에 노출된 이주 여성들
  • 지나영 기자
  • 승인 2022.11.19 17:00
  • 호수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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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이주 여성 107명 대상 폭력 실태 설문조사
절반 이상이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 폭력, 욕설 등 경험

# 필리핀 국적의 A씨는 신체에 결함이 있는 당진 남성과 결혼했다. 결혼 이후 배우자는 신체적 결함을 A씨에게 화풀이했고, 때로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물건을 던지며 A씨를 위협했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A씨는 급하게 돈을 빌려 원룸을 얻어 집을 나왔지만, 높은 이율을 내야하는 사기까지 당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A씨는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매일 야근하며 일하고 있다.

# 10여년 전 당진 남성과 결혼한 B씨(필리핀 국적)는 줄곧 구타를 당했다. 이혼을 결심한 B씨는 남편보다 경제력이 턱없이 낮은 탓에 양육권을 남편에게 줬다. 이혼 이후 B씨는 다른 지역에서 자녀와 수시로 통화하며 지냈지만, 어느 날부터 자녀의 전화번호는 바뀌었고, 몇 년 동안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면접교섭권을 신청해야 했지만,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서류 준비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결국, 다빈치건강놀이심리협동조합을 찾아 도움을 얻어, 면접교섭권 서류를 제출했다.

ⓒ함현주
당진 이주여성 폭력 실태 조사. 자료제공=다빈치건강놀이심리협동조합. ⓒ함현주

[당진신문=지나영 기자] 국제결혼을 통한 외국인의 이주가 본격화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 지역사회 곳곳에는 이주 여성과의 문화·언어적 차이로 인한 가정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제도도 미비하며, 알리더라도 도움을 얻기란 쉽지 않다. 

사례에 나온 이주 여성 A씨의 경우처럼 이혼 후에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해 사기를 당했고, B씨는 경제력이 낮아 양육권을 남편에게 빼앗기고 이후 자녀와는 전혀 만날 수 없게 됐다. 다빈치건강놀이심리협동조합은 당진시 여성친화도시 특화사업의 하나로 이주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인권교육 및 실태조사, 그리고 여성 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조사는 2021년 8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당진시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 여성 107명을 대상으로 면접 및 전화로 진행됐다.

설문에 참여한 이주 여성 연령대는 30대와 40대가 각각 41명과 3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국적은 필리핀(26명), 중국(23명) 순이었다. 이들의 직업은 △주부(22명) △일용직·아르바이트·식당일(20명) △전문직(14명) △농업·어업·축산업(12명) 이었다.

설문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배우자가 여성의 의사와 상관없이 만지고, 키스, 포옹, 성관계 등의 신체적 접촉을 자주 혹은 가끔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52%를 차지하는 56명이었다. 

배우자에게 욕이나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는 응답자는 62명(58%)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배우자가 손바닥으로 뺨이나 머리 몸을 때리거나 때리려는 행동을 자주 한다는 응답자도  50명이었다.

경제적, 사생활 간섭 침해를 당하는 이주 여성도 있었다. 핸드폰을 수시로 보려고 한다는 응답에는 61명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응답에는 56명의 이주 여성이 응답했다. 수입과 지출 통제 등의 경제권 독점을 당하는 이주 여성은 57명으로 나타났다.

빨리빨리 문화 없는 이주 여성

이처럼 이주 여성이 배우자에게 신체·정서적 폭력을 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언어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꼽힌다. 

다빈치건강놀이심리협동조합 최익희 대표는 “작은 지방 도시에는 나이 차이 많은 남자와 여자가 연애의 과정 없이 국제결혼을 하는 사례가 많은데, 그렇다 보니 문화·언어 차이를 서로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며 “특히, 한국에 결혼해서 이주하는 여성 대부분의 국적은 필리핀, 네팔 등인데, 이들 나라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빨리빨리’ 문화가 없다. 이는 문화적 차이가 가장 큰데, 여성들은 배우자와 가족들이 빨리하라니까, 빨리해보려 하지만 남편에게는 만족스럽지 않고, 그러다 배우자는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심해지는 경우 손을 올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언어의 차이도 있다. 이주 여성이 한국어를 금방 익힐 수 없는데, 배우자에게는 그게 답답하게 느껴지면서, 언어폭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라며 “이러한 이유로 일부 한국인 남성은 이주 여성에게 폭언하고, 구타하며 심지어 억압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회에서 이주 여성이 처한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제도와 이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최익희 대표는 “만약, 폭력을 당한 이주 여성은 처음에는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러다 결국 경찰에 신고해 최후의 수단인 긴급피난처를 이용한다”라며 “그러나 대부분 이주 여성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당진에 한 이주 여성은 남편의 심한 간섭과 억압으로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다른 이주 여성이 나에게 말해줘 알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센터나 기관에서 먼저 이주 여성의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면, 이주 여성은 도움을 받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주 여성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센터나 기관이 더욱 많아지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배우자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주 여성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려는 태도도 필요하며, 억압하겠다는 태도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