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주 수필가/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이득주 수필가/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당진신문
이득주 수필가/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당진신문

어머니, 어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기일이어서 동생들과 산소에 모여 낮 제사를 지냈습니다. 옛날처럼 자정 무렵 찬물로 세수하고 경건하게 제를 올려야 도리인 줄 알면서, 또 불효하고 말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4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날의 추억이 바람꽃처럼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어머니도 작년 구월, 아버지 곁을 그리워하며 따라가셨지요. 두 분이 떠나시고 맞이하는 첫 번째 제사라 추모하는 마음 더욱더 애틋합니다. 

살아생전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를 뉘우쳤습니다. 남은 자손끼리 우애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간곡히 빌었습니다. 

“어머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번에도 음식은 집에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예로부터 제사는 정성이 다라고 했는데, 가족들이 바쁘다며 제물을 사다 쓰자고 했습니다. 그저 쉬운 대로 시장에서 시루떡 사고, 마트에서 포사고, 과일 사서 제사 올렸습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 미역국을 좋아하셨는데, 그것도 못 챙기고 찬 음식만 올려 죄송합니다. 저희 성의가 부족하단 말은 차마 못 하고 시대가 그렇다고 탓해 봅니다. 

예전처럼 저녁에 제사 지내고 새벽에 출근하려면 힘이 듭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멀리서 사는 동생들도 그렇다니 어쩌겠어요. 부모가 자식을 이길 수 없다는 옛말처럼 염치는 없지만 용서해 주세요. 돌아오는 구월, 어머님 제사도 오늘처럼 낮에 지낼 예정이오니 꼭 기억해 두세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왔는데 제사 예절하나 지키지 못해 송구합니다.

부모님께서 떠나신 자리가 너무나 큽니다. 살아계실 때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동생들은 저에게 ‘어른 노릇 잘해 달라고, 큰형이 부모 대신 아니냐고’ 무언의 압박을 합니다. 

부모님께 응석 부리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나 봅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자식 걱정으로 잠 못 이루신 날들이 많았지요” 이제야 부모님의 심정을 손톱만큼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따라 하느님 곁으로 가신 후, 저는 몇 달 동안 가문을 화목하게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아내와 자식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여섯 동생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남겨주신 유산을 놓고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맏이라고 저한테 특별히 많이 챙겨 주셨지요. 어머니 유언대로만 처리하면 쉽겠지만 그래도 섭섭해할 동생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날 고민 끝에 칠 남매가 똑같이 나누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제사를 마친 후 가족회의를 열어 동생들에게 제 계획을 얘기했지요. 하지만 자신의 것이 적다며 불평하는 동생이 나왔습니다. 

저는 동생들에게 “앞으로 형제끼리 화목하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모두가 섭섭하지 않도록 공평하게 나누었으니 검소하게 사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소중하게 받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설득했습니다.

한동안 어두운 침묵이 흘렀지요. 이때 밖에서 소소리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유리 창문을 탕탕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목소리 같았습니다. 

‘너희들 재산 두고 싸우면 안 된다, 형이 여러 형편을 생각해서 결정한 것 같으니 모두 그대로 따라라!’ 

이 소리를 다 들었는지,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원만하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음날 다시 산소에 갔습니다. 쑥쑥 올라오던 잡풀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새 잔디를 입혀 드렸습니다. 아버지 묘에서 잘 내려다보이는 입구에는 영산홍 묘목 백여 그루를 심었습니다. 봄이면 어머니가 만개한 분홍색 꽃봉오리를 올려다보며 친정을 그리워하던 꽃나무입니다. 

칠 남매가 모여 한방에 잘 때면 흐뭇하게 지켜보며 밤새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시던 어머니. 오늘은 우리가 부드러운 황토를 떠서 봉분에 이불처럼 덮어드렸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돌아보니 산소 뒤편 소나무 우듬지에 까치들이 몰려와 합창하고 있었습니다. 선산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까치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롯이 부모님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이 흰 구름 되어 흘러갑니다. 고운 새소리에 빠져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한창이나 서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단비가 조용히 내려왔습니다. 산소 앞에 좋아하던 영산홍을 심어 놓고 유산도 사이좋게 나누는 걸 보고, 목이 메어 우는 아버지 눈물 같았습니다. 혼자 고민하던 상속 문제도 해결하고 제사도 지내고 나니 이제야 홀가분했습니다. 시나브로 나이 들어가는 동생들 얼굴을 보니 어릴 적 개구쟁이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러셨죠. “재산은 없다가도 생길 수 있지만, 형제간 우애는 한번 갈라지면 붙이기 어렵다.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마음 씀씀이가 중요하다”

‘어머니! 어머니 소원대로 형제끼리 잘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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