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지막 선물
[오피니언] 마지막 선물
  • 당진신문
  • 승인 2022.07.29 20:00
  • 호수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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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주 수필가/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어머니 나이가 어느덧 구순이시다. 이제 다른 사람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 가신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집 팔 남매 중 장남이셨다. 그러니 어머니의 시집살이는 불을 보듯 뻔했다. 시집와서 몇 년간은 매일 점심도 굶으셨다. 부엌 광에 들어가도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다. 기가 막혀, 뒤란에서 혼자 많이 우셨다고 한다. 그렇다고 친정에 말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차마 얘기도 못 꺼내고 그렇게 벙어리로 수년을 살았다. 

텃밭의 오십여 평 마늘 농사는 올해도 풍년이다. 어머니의 발소리에 눈을 뜨고 손길에 땡글 여물어 갔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마지막 선물은 올해도 풍성하게 장만이 됐다. 파랗고 꼿꼿하던 마늘잎이 갈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서둘러 마늘을 캤다. 열 개씩 묶어 바람이 잘 들어오는 창고마당에서 말렸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수확해야 썩지도 않고 저장이 잘 된다며 만사 제쳐 놓고 수확을 하신 거다. 

마늘 캐는 작업은 농사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뾰족한 쇠꼬챙이로 한 알 한 알 소중하게 캐지 않으면 상처가 난다. 상처 난 마늘은 바로 썩기 때문에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 한나절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자 마늘을 캐다 보면 종아리가 땅기고 금시 지치게 된다. 작년 이맘때, 어머니는 마늘 한 접을 내게 주면서 올해가 마지막 마늘 농사다. 더는 힘들어 못 하겠다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눈꽃처럼 하얀 게 센 흰머리에 소나무같이 굽은 허리가 그날따라 안 쓰려 워 보였다. 

하지만 해가 바뀌자 또 마음이 변했다. 자식들 주고 싶어 굽어진 허리에 복대까지 차고 또 마늘을 심으셨다. 밭에서 나온 마늘이 시원한 그늘에 며칠 쉬더니 얼굴도 몸매도 훨씬 날씬해졌다. 가느다란 철봉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마늘 통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어머니의 손길에 마늘은 상급반, 중급반, 하급반으로 우열이 매겨졌다. 여기서도 인간 세상의 인물, 성적주의가 여지없이 적용되는가 보다. 상급반 친구들은 철봉에서도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늘 꾸러미를 바라다보는 노인네의 입가엔 벌써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쳐다보고 만져보는지 모르겠다. 

이미 누구한테 줄 건지 마음속으로 얼굴을 그리셨겠지…. 아주 잘난 놈 몇 접은 벌써 집안 깊숙이 숨겨져 있다. 사돈에게 보낼 특별한 진상품이다. 이건 아무도 못 가져간다. 장남인 나한테도 차례가 오지 않는다. 서해안 육 쪽 마늘을 선물 받은 도시 사돈도, 해마다 홍삼이며 굴비며 최고의 선물을 보내오신다. 어머니는 그걸 안다. 품앗이로 갚아야 한다는 걸…. 

어머니 건강이 날로 좋지 않다. 작년에도 마늘을 심고 나서 며칠 안 돼 허리가 아프다고 끙끙거리며 몸져누우셨다. 전에 다니던 천안의 척추 전문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이젠 겁도 내지 않는다. 노인네답지 않게 떨지도 않고 호탕하셨다. 일주일 후 의사가 퇴원시키며 당부의 말을 잇지 않았다. 

“할머니, 이젠 밭에 가서 무리하게 일하지 마세요! 비싼 돈 들여 수술했는데 부러지면 큰일나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오며 친절하게 인사한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담당 간호사도 어머니 손을 잡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집에 간다니 신이 난 표정이다. 퇴원하는 차 안에서 앞으로 삼 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 했다. 왜냐고 웃으며 물어보았더니 막내아들 은행 지점장 되는 걸 보고 싶단다.

검게 그을린 어머니 얼굴에 비장함이 엿보였다. 작년엔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따뜻할 때 아버지 따라가야겠다 하시더니. 늙어가도 생에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가 보다. 지난 유월에도 온종일 뙤약볕에서 돌덩이 같은 흙을 뒤져가며 마늘을 캐셨다. 내가 이 고생을 왜 하나 몰라. 이제 정말 올해가 끝이다. 이게 너희들한테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하셨다. 땅바닥에 철퍼덕 궁둥이를 붙이고 앉자 마치 유언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러나 이 노인 말씀 또 깨질 것을 자식들은 잘 안다. 작년에도 똑같이 그러셨으니까. 시골 농부의 아내로 평생 살아온 어머니가 농사를 놓으면 생명줄을 놓는 것으로 아는가 보다. 허리가 구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구십 평생 일했건만 그 인연의 줄을 놓지 못한다. 무한정 걱정해야 하는 자식 농사와 마찬가진가 보다.

마늘 값은 올해에도 비싸지 않았다. 수입 마늘이 시장에서 판치는 바람에 종잣값, 비룟값, 농약값을 주고 나면 적자다. 그래도 농부들은 또 마늘을 심는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중국산 마늘을 사서 먹지는 않는다. 

노인이 직접 농사지어 한 접씩 차에 실어 주는 맛을 나는 모른다. 살며시 어머니 손을 잡아 봤다. 손바닥이 새로 만든 멍석 바닥처럼 거칠고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 한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몸은 플라타너스 껍질처럼 다 벗겨지셨다. 

사십오 세에 낳은 늦둥이 아들이 은행 지점장 되는 걸 꼭 보고 싶다는 어머니. 이제 구순이 넘으셨는데 언제까지나 자식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마늘이 내 것만 남았다고 하기에 창고에 있는 마늘을 모두 차에 실었다. 대전에 사는 고향 친구에게도 한 접 갖다주려고…. 잠시 후 어머니가 헐레벌떡 달려와 트렁크 문을 열어 본다. 

“얘야 그래도 종자는 남겨 놓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