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준치
[오피니언] 준치
  • 당진신문
  • 승인 2022.05.27 18:31
  • 호수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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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주 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이득주 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이득주 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수목이 울창한 공산성을 찾아간다. 유성을 지나 시외로 접어드니 차창 밖으로 밀려오는 들판에 트랙터가 분주하다. 신호등이 없는 논에서 커브를 돌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올라왔다. 마른 논을 써리는 작업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모내기 철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5월은 농촌에서 가장 바쁜 계절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논밭에서 살아야만 했다. 지금이야 트랙터가 논갈이부터 쓰레질까지 논스톱으로 해결하니, 웬만한 작업은 한 두 시간이면 끝이 난다. 하지만 예전에는 며칠씩 걸렸다. 일단 소를 데려와야 한다. 부잣집 눈치를 봐가며 비어 있는 날짜를 받아야 하고, 새벽부터 소죽을 쑤어 놓아야 논갈이를 할 수 있다. 

소의 입맛을 맞추려고 비싼 콩까지 넣고 소죽을 끓였는데, 일하러 온 소가 잘 먹지 않으면 그날 작업은 헛일이다. 봄철 고된 작업으로 지친 소가 아버지의 애를 태웠다. 

모내기하려면 먼저 무너진 논둑을 가래로 파내고 젖은 흙을 발라 매끈하게 만져 놓아야 한다. 그래야 논물이 새지 않는다. 논에 물을 채우고 1차 논갈이를 한 후 보름쯤 지나 2차 논갈이한다. 논흙이 물렁거리면 써레 작업에 들어간다. 써레 작업을 하고 삼일 정도 지나면 흙탕물이 맑게 가라앉는다. 모내기에 적당한 논바닥이 된다. 

이때쯤 되면 동네에 남모르는 외지 아주머니들이 등장한다. 머리에 똬리를 얹고 커다란 양푼을 이고 다녔다. 그 옆을 지나려면 생선 냄새가 진동했다. 양푼 속에 들어 있던 생선이 ‘준치’였다. 장사 아주머니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논이 많은 부잣집부터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한나절이면 가져온 준치를 다 팔고 돈 대신 받은 쌀을 이고 우리 동네를 유유히 떠나갔다.

모내기하는 날, 어머니는 가마솥에 적당히 자른 준치와 마당 가에 심어 놓은 연한 쑥갓을 뜯어 다 넣고 국을 끓였다. 가마솥에서 솔솔 김이 나기 시작하면 국물 위로 생선 기름이 뜬다. 구수한 냄새가 시커먼 부엌 천정을 돌아 뒤란 장독대까지 퍼져나갔다. 

준치는 몸에 가시가 많다. 가시만 없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말이다. 날카로운 뼈가 있어 방심하고 먹어서는 안 된다. 천천히 발라 먹어야 한다.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했다 간 봉변을 당한다. 가시가 등뼈를 가운데 두고 일정하게 같은 방향으로 자리를 잡은 게 아니라 눕기도 하고 서기도 했다. 그러니 맘대로 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입에 들어간 준치 살은 무척이나 달고 부드러웠다.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쑥갓을 듬뿍 넣고 끓인 준치국은 봄기운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봄에 먹는 생선 중 준치가 가장 맛있다고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준치는 ‘비늘은 크고 가시가 많으며 등이 푸르다. 맛이 달고 담백하다. 곡우가 지난 뒤에 우이도에서 잡히기 시작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당진 맷돌포는 아산만의 입구에 위치해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며 너른 갯벌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오동나무에 보라색 꽃이 활짝 피는 5월이면 맷돌포 앞바다는 산란을 위해 서해에서 올라오는 준치들이 그물에 걸려 팔짝팔짝 춤을 추었다. 

준치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에 준치가 맛이 좋고 가시도 없어 사람들이 즐겨 먹자 씨가 마르게 되었다. 이를 걱정한 용왕은 물고기들에게 ‘사람들이 준치만 찾으니 너희들 가시를 뽑아 준치에게 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용왕의 명령을 받은 물고기들은 각자 가시를 뽑아 준치에게 꽂았다. 그래서 준치 꽁지에 유난히 가시가 많다고 한다.

어려서 많이 먹어 봤던 준치가 지금은 고향에서 잡히지 않는다. 목포 쪽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귀한 생선이 되었다. 60년대 가끔 먹어 본 준치국이 지금도 생각나는 걸 보면 맛있는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준치국을 먹다 가시가 목에 걸려 고생한 적도 있지만 구수한 맛에 비하면 큰 문제는 아니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 맛이 으뜸인 준치도 가시를 조심해야 한다. 이렇듯 세상사 좋은 일, 즐거운 일도 많지만, 내면에 감추어진 가시 같은 것도 있다. 

36년 공직에 있으며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안에 가시를 품고 살지는 않았는지, 남에게 친절한 척하며 뒤로는 험담이나 하고 다니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한 자신이 없다. 우연히 인터넷에 나온 준치를 보고 생선 속에 숨겨진 뾰족한 가시가 생각나 뜨끔 했다. 이제부터라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모내기는 농촌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품앗이 작업에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나섰다. 농토가 많은 집부터 시작해 적은 집까지 순서대로 모를 심다 보면 보름씩이나 걸렸다. 막바지에 가면 마을 사람 모두 지쳐서 힘들어했다. 들판 위로 노란 콩고물 같은 송홧가루가 날린다. 

품앗이로 모내기를 마치고 햇빛 가득 받아 따끈해진 논둑에 앉아 준치국 한 그릇 먹고 싶다. 먼 논에서 모를 뽑고 있는 당숙도 부르고 동네 잔칫날 선물로 받은 새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쑥을 뜯고 있는 섭실 할머니도 불러 막걸리 한 잔 드리고 싶다. 따끈한 준치국 한 입 뜨고 ‘아 맛나다’ 하던 어른들 목소리가 금방 들려 올 것만 같다. 

연일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발, 거머리에 물리고 논물에 절어 누렇게 떠 있던 어른들의 장딴지가 농촌을 지켜 주었다. 점심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어서 나와. 밥 먹고 하세”하며 큰 소리로 불러주던 어른들은 다 떠나고 이제는 불러도 끔쩍 않는 무정한 트랙터가 외롭게 농촌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