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면 거산리 이정식·윤석희 부부

▲ 올해 결혼 61년주년을 맞이한 이정식·윤석희 부부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닮아 있었다.
옛적의 결혼주례사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단골멘트로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가 있다. 이정식(80)할아버지와 윤석희(79)할머니를 보니, 문득 그 구절이 떠오른다. 열여덟 곱디고운 새색시와 열아홉 건장한 새신랑은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다.

올해로 결혼 61주년을 맞이한 노부부는, 함께 살아온 날로 환갑을 맞은 것이다. 6년 전, 몸이 불편한 아내를 위해 도시생활을 접고 당진에 뿌리 내린 할아버지. 할머니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이다.

그런 불편한 몸으로 할머니는 3년 전부터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다는데...
손하경 기자 sarang418@hanmail.net



남편이 아내에게 주고 싶은 표창

파킨슨병이란 만성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진전(떨림), 근육의 강직, 몸동작이 느려지는 서동, 감각이상, 정신기능 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할머니는 10년 전 ‘파킨슨병’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진단 받았다. 이런 증상 등으로 언어 및 보행장애가 있었고, 여기에다 혈압과 당뇨를 더해 외출이 쉽지 않아 보였다. 고령의 나이로 지금껏 아내를 보살펴왔을 할아버지를 보니, 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눈에 보이는 듯하다. 다행히 올해 7월부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라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노인의 체력으로 아내를 돌본다는 것이 감당하기 힘들더군요. 몇 달 전부터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여 식사준비, 목욕, 빨래 등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 전까지는 아주 꼼짝을 못했습니다.

시장이나 공과금납부를 하러 시내에 나갈 일이 생기면, 마음이 급해서 제대로 볼일을 볼 수가 없었지요. 이래 뵈도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아주 잘 끓입니다(웃음)”


인천에서 결혼생활과 함께 34년간 공직생활을 해왔다는 이정식 할아버지. 그래서인지 연세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표정과 말씀에는 패기가 느껴졌다. 또한 말씀 내내 한참 아래인 기자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에서, 그의 훌륭한 인품이 묻어나왔다.


“비록 지금은 아내가 저를 챙겨줄 순 없지만, 경찰관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결혼 후 6.25전쟁이 일어나, 전쟁터에 투입되면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전쟁터로 가야하는 저의 마음도 그저 무겁기만 했지요.

덕분에 국가유공자라는 증서를 대통령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물론 표창도 수도 없이 받아왔지요(웃음). 그런 공을 세우게 된 것이 저로서도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내의 공이 더 크다고 봅니다”


아내가 가장 아끼는 ‘작업실’

그는 정년퇴직 후 아내와 함께 미국, 유럽여행을 하며 즐거운 여가를 보내왔다. 적어도 할머니가 병을 얻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추억들로 가득한 앨범을 펼쳐보이며, 그때를 회상했다. 현재 할머니는 언어장애가 있어, 일반인이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러나 61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것처럼, 할아버지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 딸아이가 당진에 있기도 하고... 6년 전 이 곳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공기 좋은 시골에서 요양을 하면 아내에게도 좋을 것 같더군요. 근데 요즘 식사를 잘 못해서 걱정입니다. 그럴 때면 한 캔에 1,800원이나 되는 고가의 대용식을 줍니다.

영양이 풍부해서 그거라도 먹으니 다행입니다. 완치가 되면 좋겠지만, 사실 그게 어렵다고 하더군요. 지금으로써는 더 이상 악화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한 몸으로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취미생활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온종일 그 것을 만드느라 거실에 나올 생각조차 안한다는 할머니.


“집에 음료수 박스가 있었습니다. 그걸 갖고 가위질을 하며, 무언가를 만들려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엔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지요. 파킨슨병이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해서, 늘 걱정하던 중에 괜찮다 싶었지요.

아무래도 손가락을 많이 쓰니까요. 좀 더 편하게 만들라고 스티커로 된 색테이프를 사다주었더니, 재단하여 박스 표면에 붙이는 겁니다”
네평 남짓한 방은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공간이다.

그 곳에는 할머니가 만든 수납용품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금까지 마을주민에게 나눠준 것을 합한다면, 방안을 가득 메우고도 남았을 것이라 한다.


“새벽에 눈만 뜨면 그 방으로 갑니다. 먹을 때 빼놓고는 온종일 그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지요. 수납용품 하나를 만들려면, 빈 박스 5개가 필요합니다. 그 만큼 아내가 만드는 것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튼튼하지요.

온전치 않은 사람이 무언가 만드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 아내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재료를 구해다 주는 일입니다. 박스 구하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군요. 서산, 당진, 예산지역의 약국까지 돌아다녔습니다. 박스를 얻으려고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해서 자존심이 상했지요.

그래도 한때는 공직생활을 하고, 참전용사로서의 자긍심으로 가득찬 사람인데 말이지요(웃음).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아내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개의치 않기로 했습니다”

“할멈, 이제는 내가 희생할 차례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만 짓고 있던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을 것......”


귀를 기울이고 겨우 들은 할머니의 한마디였다. 물론 할아버지의 통역(?)이 조금은 필요했다. 이들 부부를 보니 부부의 의미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비춰졌다.


“사실 아내가 이런 병을 얻은 것이, 꼭 저의 잘못인 것만 같아 늘 마음이 아프고 걸립니다. 경찰관으로서 나라일에만 신경을 써왔지, 정작 내 가정에는 소홀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나더군요. 새벽에 출근하여 밤에 들어오다 보니, 아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병을 키웠다는 생각에 죄스러울 뿐입니다.

좀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후회로 남습니다. 제가 마음 편히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픔도 이야기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역할을 다 해준 아내입니다. 이제는 제가 아내를 위해 희생할 차례입니다. 자식이 아무리 잘 한들 서로 한평생 부대끼며 살아 온 내 아내만 하겠습니까. 내 몸이 아플 때 그래도 알아주고, 보듬어 주는 사람은 부모 빼고 이 세상에 ‘부부’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전 그렇습니다”

※ 제보를 해주신 행복한 실버요양센터에 감사드립니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