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경찰서 신평파출소 순경 하용봉

당진경찰서 신평파출소 순경 하용봉 ⓒ당진신문
당진경찰서 신평파출소 순경 하용봉 ⓒ당진신문

당진경찰서 신평파출소는 최근 파출소장을 필두로 시골길 마스터라는 자체 시책을 선정해 이행 중이다. 구석구석 농로를 순찰하며 길을 익히고 치안도 함께 살피는 것이다. 

봄 기운 충만한 4월의 어느날이었다. “무슨 꽃이냐?” 소장님이 연분홍색 꽃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답은 매화, 벚꽃 중에 하나였다. 한번 훑어본 후 매화라고 답했다. 소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벚꽃이라는 것이다.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의견에 차마 동의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매화와 벚꽃을 나누는 ‘매벚논쟁’이 시작됐다.

매화라고 답한 이유는 크기와 꽃망울의 위치 등 겉모습의 특징은 차치하고 매화를 향한 평소의 관심 때문이었다. 그 매개는 1932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수통 폭탄을 투척하고 같은 해 순국한 매헌(梅軒) 윤봉길이다. 매헌의 매는 매화를 뜻한다. 

대학생 시절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교양 강의 때 매헌을 알게 됐다. 매헌은 알던 바와 달리 민족애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독립과 공동체의 부흥을 이끈 위인이었다. 그렇게 매화는 한번 훑어보면 틀림없이 알아볼 수 있는 꽃이 됐다. 

매헌은 몽매한 한 청년이 저지른 ‘묘패사건’을 계기로 계몽 운동을 전개한다. 그리고 상하이 망명 전까지 야학과 강연회를 개설하는 등 농촌부흥운동을 이끈다. 이러한 매헌의 행적과 숭고한 사상은 자필이력서 등 여러 기록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의거 전 작성한 서신 형식의 유서에 뚜렷이 드러난다. 그중 동포에게 보내는 글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하여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오직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이라고 한다. 100년을 덧없이 사느니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 25살의 매헌은 그렇게 두 번이나 동포의 안녕을 기원하며 글을 맺었다. 특별한 존재였던 독립운동가가 이웃처럼 가깝게 느껴진 그래서 더 서글픈 마지막 인사였다. 

‘매벚논쟁’은 사실 내적 아우성으로 종료됐다. 벚꽃과 매화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매년 봄 같은 모습으로 피어날 매화처럼 경찰관으로서의 정체성과 마음가짐도 변치 않아야 함은 자명했다. 백 년을 살기보다 국민의 신체 생명 재산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다. 오늘도 시골길에서 마주하는 매헌을 보며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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