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114년이 지난 지금 여성의 삶은 나아졌는가?
[오피니언] 114년이 지난 지금 여성의 삶은 나아졌는가?
  • 당진신문
  • 승인 2022.03.11 18:48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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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마을교육공동체/어울림협동조합 대표
한은경 마을교육공동체/어울림협동조합 대표 ⓒ당진신문
한은경 마을교육공동체/어울림협동조합 대표 ⓒ당진신문

3월 8일 오전 11시 구터미널 로터리가 여성들의 활기찬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오늘 이곳에 여성들이 모인 이유는 뭘까?

114년전인 1908년 2월 28일 미국의 여성 섬유 노동자 2만여 명이 뉴욕거리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우리가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기 때문이지. 그런 우리가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그러니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을, 그리고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했다. 2만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근무 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며 행진했던 것이다. 1910년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됐으며 1975년 유엔에 의해 매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됐다. 

114년 후 지방 소도시 당진에서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꽃을 나눠주고 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왜 꽃을 주는지 영문도 모른채 꽃을 받고 행복해 하신다. 자신이 왜 꽃을 받아야 하는지, 왜 꽃을 주는지 궁금해 하시는 그분들에게 ‘열심히 살아오신걸 축하하는 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살아온 여성들. 11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때의 그녀들과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1908년 이전에도 여성들은 더나은 노동조건과 권리 신장을 위해 싸워야 했고, 그 이후에도 싸우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전업주부라는 말이 낯선 세상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일이 오롯이 여성의 몫이었던 시대에도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가정에 돌아와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지친 육체를 돌볼 겨를도 없이 이어지는 노동을 참아내야 했다. 지금은 다른가? 남성들이 육아휴직도 하고, 가사노동을 분담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도와주는 일이지 자신의 일이거나 함께하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여성은 누가 돌봐 주어야 할까?

이대남으로 불리는 20대 남성들은 자신의 일자리와 권리가 여성들에 의해 침해되고 빼앗긴다고 말한다.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는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페이스북에 일곱 글자를 올렸다. 20대 대선에서 유력한 후보들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을 부추겼다. 

2021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젠더격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지수 순위는 156개국 중 102위라고 한다. 이는 일자리, 교육, 보건, 정치 진출 등 분야에서 성별간 차이를 지수로 산출한 자료로 성별 임금 격차, 여성의 고위직 진출 비율 등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의 여성 인권 상황은 선진국 가운데 아주 나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36% 낮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이렇게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운 한국 여성의 상황이 역대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114년 전 노동조건과 권리 신장을 위해 싸워왔던 그때에 비해 현재 여성의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