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0일 서울발-당진행 기사, 음란물 시청하며 운행
현행법상 처벌 기준 없어...운전중 휴대폰사용 벌금 부과 그쳐
운수회사 징계 아닌 사직 처리...“다시 운전대 잡을까 두려워”

[당진신문=지나영 기자] 고속버스 기사가 음란물 영상을 시청하며 서울에서 당진까지 운행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버스에는 다수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지난 9월 30일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대학생 A씨는 주말을 앞두고 가족이 있는 당진에 오기 위해 저녁 8시 50분 서울발-당진행 버스를 탑승했다. 그러나 A씨는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한 이후부터 버스에서 경고음이 자주 들리고,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운전석을 바라본 A씨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운전기사가 앞에 놓여진 휴대폰에 음란물을 보며 운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 놀란 A씨는 이내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조용히 창문에 비춰진 운전석을 촬영했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당진까지 오는 동안, 사고 위험은 물론 운전기사에 대한 소름과 함께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결국 운전기사 B씨는 신고를 받고 당진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관에게 음란물 시청을 시인했지만, 휴대전화 금지법에 의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A씨의 어머니는 “버스에서 모든 승객들이 내리고 경찰은 운전기사에게 음란물을 보면서 운행을 했는지 여부를 물었고 음란물 시청에 대해 시인을 했다”면서도 “음란물 시청을 시인했음에도 그가 받은 처분은 운전중 휴대폰 사용에 대해서만 범칙금 부과다. 경찰 측에서는 ‘출동하기 전에 여러 가지 법적 적용을 검토했지만 음란물 시청에 대해서는 처분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최근 어린아이들도 자극적인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공공장소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는 행위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데, 법적으로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난다”면서 “음란물 시청 행위로 인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줬다면, 이는 충분히 성희롱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보자가 제공한 동영상 갈무리 화면. 주행중인 버스기사의 휴대폰에 음란물이 재생되고 있는 모습. ⓒ제보자 제공
제보자가 제공한 동영상 갈무리 화면. 주행중인 버스기사의 휴대폰에 음란물이 재생되고 있는 모습. ⓒ제보자 제공

 운수회사, 버스기사에 징계 아닌 ‘사직’ 
제보자 “다시 운전대 잡을까 두렵다”

실제로 현행법상 공공장소에서 음란물 시청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 기준 근거는 없다보니 버스 운전기사의 경우에도 음란물 시청이 아닌 운행 중에 휴대폰을 사용하고 시청을 한 부분에 대해서만 벌금 처분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버스기사는 이후에도 몇 일간 버스 운행을 계속했으며, 운수회사에서는 제보자에 의해 뒤늦게 인지하고 B씨를 퇴사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어머니는 “운전기사가 범칙금 처분을 받고도 며칠을 더 일했다는 사실이 더욱 황당하다”며 “운수회사는 업무 중에 음란물을 시청한 운전기사의 사직으로 일을 마무리했는데, 결국  어디에서든 운전을 다시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아 무섭다”고 말했다.

이에 운수회사 관계자는 “징계를 하려면 증거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해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제보자에게 영상을 요구했고, 징계 처분을 내리는데 시간이 소요됐다”면서 “중대한 사안인지, 문제가 되는지 내부 검토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있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운전기사가 사직하는 것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의 사직이 자의에 의해서인지, 회사에서 권고한 것인지 여부는 말해줄 수 없다. 운전기사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라면서 “제보자는 계속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사직이 곧 밥줄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게 가장 큰 징계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기사의 음란물 시청, 강력 처벌 해야”

한편, 운수회사의 대응을 두고 운전기사의 음란물 시청 행위만으로 충분히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양성평등기본법 제3조에서 공공단체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또는 성적 요구 등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성희롱으로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 이 버스기사는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로서 업무와 무관한 성적 언동(음란물 시청)으로 인해 고객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유발했고,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

당진시 여성친화도시TF팀 임정규 팀장은 “이번 사건은 운전 중 휴대폰을 본 것 정도가 아닌, 어떤 내용을 보았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며 “2016년 양성평등기본법이 생기고, 시민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의 성희롱이 성립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즉,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운전기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운전자로서 책임감, 사명감, 안전운행을 통한 고객의 이동권리 나아가 인권을 보장해야 할 책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직무와 의무를 망각하고 음란물을 버젓이 공공장소에서 위험한 질주를 하며 본 것은 승객의 안전을 위협한 것”이라며 “회사 측에서는 기사의 사직서를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고충 처리 절차와 내용을 제대로 갖추고 실행했는지, 그리고 성희롱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제대로 수립했는지 등에 대한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고용노동부 또한 근로감독관으로서 철저히 감사할 필요가 있다”면서 “성희롱예방교육을 사업주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에게 실시하는지, 사건이 발생하고 고충 처리에 대해 어떠한 방법, 절차, 방지조치, 징계 요청 등을 갖추고 있는지 등에 대한 특별감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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