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무명순교자 묘

[당진신문=이석준 기자] 당진 지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문화유적지가 많다. 예산이 투입돼 활발하게 복원되고 관리되는 곳들도 있으나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역사문화유적지도 있다. 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당진의 역사문화유적지를 조명해보려 한다. 지역 내 역사·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합덕 대산리에 위치한 무명 순교자묘
합덕 대산리에 위치한 무명 순교자묘

김대건 신부의 탄생유적지로 유명한 솔뫼성지와 다블뤼주교를 비롯한 여러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인 신리성지를 연결하는 13.3km 길이의 버그내 순례길이 있다. 솔뫼성지와 신리성지, 합덕제, 합덕성당 등 천주교 유적지를 따라 걷는 넓은 들판 속 순례길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5월의 추천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합덕에 위치한 천주교 유적지인 솔뫼성지와 신리성지, 합덕성당 등은 잘 정비된 공원, 박물관, 조형물 등을 갖춰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곳이 바로 ‘무명 순교자묘’이다.

신리성지에서 버그내길을 따라 약 2km를 걷다 보면 ‘무명 순교자묘’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오는데, 그 표지판을 따라 산길로 약 500m 올라가면 14개의 십자가와 ‘무명 순교자 묘’가 나온다.

무명 순교자 묘는 신리지역에서 태어나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손자선 토마스 성인 집안의 선산이며, 1866년 흥선대원군에 의한 대규모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겪으며 처형된 신리지역 일대의 천주교 신자들의 유해가 발굴된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관아에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받으며 모진 고문을 당하던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손등을 스스로 물어뜯으며 배교를 거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끝내 배교를 거부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은 1866년 5월 18일,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유해는 순교한 지 사흘 만에 신리지역의 사람들에 의해 공주읍성 밖 수풀속에서 수습돼 옥중편지와 평소 쓰던 술잔 등과 함께 손씨 집안의 선산에 매장됐다. 

2년 뒤인 1868년 독일인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천주교인들이 도굴을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신리일대에는 또 다시 대규모 천주교 박해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집안 사람들을 비롯 400여 가구 및 천주교를 믿었던 신리지역 일대는 철저히 파괴되어, 조선에서 천주교가 허용된 20년 후에도 한 사람의 천주교 신자도 살지 않는 지역이 됐다. 손씨 집안의 선산은 천주교를 믿다 몰살당한 십 수기의 손씨 가문 사람이 매장돼있다는 구전만을 남긴 채 잊혀진다.

1972년 신리성지 인근 손씨 집안의 선산이 과수원으로 개발되면서 목없는 시신 32기가 발견된다. 

목없는 시신들은 묵주와 함께 발견됐고, 1985년에는 14기의 목 없는 시신과 십자가가 발견됐는데 이곳이 손씨 집안의 묘라는 일대의 구전을 통해 14기의 시신은 손자선 성인의 가족으로 전해져 ‘무명 순교자묘’로 이장된다.

폐허와 같은 상태로 남아있던 ‘무명 순교자묘’는 인근의 신리지역 일대가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아 천주교 유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가, 2008년 그 일대가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며 깨끗하게 재정비 됐다.

화려한 조형물은 없지만 가슴 아픈 종교의 역사가 남아 있는 ‘무명 순교자묘’ 역시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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