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용 당진참여연대 회원

우리에게 송전탑이란 어떤 느낌일까? 공장 굴뚝하고 같은 느낌일까? 한참 산업화가 진행될 때, 공장 굴뚝은 ‘잘 살아보자‘의 상징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선진국이 된 지금 대한민국에서 공장 굴뚝은 공해의 상징일 것이다. 송전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들이 어렸을 때, 파리도 가본 적이 없는데 에펠탑을 보았다고 주장했었다. 송전탑을 에펠탑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한 때는 송전탑이 선진 산업 국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도시 지역에서 송전탑은 흉물로 취급됐고, 사람들의 눈에서 상당수 사라졌다. 시화방조제를 지나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송전탑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송전탑을 경기도와 안산시가 수중케이블로 대체하기 위해서 한전과 협의 중이라 한다. 

당진에도 많은 송전탑이 있다. 여기에 새로이 우강면에 신탕정변전소로 가는 송전탑을 건설하려하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송전탑으로 건설하지 말고, 수중케이블로 직선으로 해서 삽교호를 건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한전 측은 아산하고의 형평성 때문에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수중케이블 건설이 왜 안되나? 삽교호는 아시다시피, 아산, 당진, 예산 등에 걸쳐있다. 수중케이블로 건너는 구간도 아산하고 당진이 반반이다. 수중케이블 구간에 있어서 아산하고 당진의 형평성이 맞다는 얘기이다.
공장굴뚝이 산업화의 상징에서 공해의 상징이 되었듯이 송전탑도 마찬가지이다. 전기를 가져오는 문명의 상징에서, 흉물스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지역에서 반대하는데, 그 반대를 무릅쓰고서 송전탑을 건설할 만큼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나라는 수중케이블과 지중화송전케이블 건설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전 세계로 수출을 하고 있다. 수중케이블로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송전탑을 건설하려고 하는 이유가 경제성 뿐이라면 납득할 수 없다. 

당진 우강에서도, 안산처럼 큰 돈을 들여서 만든 송전탑을 수중케이블로 바꾸는 낭비를 할 셈인가. 지금 경제성이 있다는 것이, 앞으로도 경제성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경제성으로만 따진다면, 도심 지역에서는 왜 송전탑을 대부분 지중화 송전케이블로 바꾸었다는 말인가. 아름다움도 경제성이다.

송전탑으로 삽교호를 건너기 위해서(삽교호 수면에는 송전탑의 건설을 최소화한다고 한다), 삽교호의 짧은 부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소들섬에 송전탑을 설치하는 것이 원안이라고 한다. 

삽교호 준공식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 마지막으로 참여한 공식행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과 같이 시작된 삽교호지만, 생명도 싹튼다. 소들섬은 원래 없던 섬이나, 삽교호 물과 모래의 흐름이 만들어 낸 새로운 생명의 섬이다. 이 섬은 가창오리를 비롯한 여러 철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철새가 떠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민감한 철새들이 송전탑의 웅웅거리는 소리에 소들섬을 떠날 것이라 생각한다. 새들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새들도 송전탑을 싫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강면 사람들도 전기를 쓰는데 왜 송전탑을 반대하냐고 묻는다. 우강으로 지나가는 송전선로의 전기는 우강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강 주민들은 전기를 반대하지 않는다. 자기네들 땅으로 전기가 지나가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게, 주변에 피해가 적게, 수중과 지중으로 지나가기를 원할 뿐이다. 

다만, 우강 주민들은 자기네 땅으로 지나가는 전기가 공중으로 갈지, 땅속으로 갈지, 수면 아래로 갈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길 바랄뿐이다. 우강면민들이 쓰지도 않는 전기가 지나가도록 허락하여주었는데, 그 정도의 권한은 가져야 되지 않겠는가? 

서울에는 송전탑이 거의 없다. 서울시민과 우강면민의 가치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만큼, 우강면민들의 의견도 존중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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