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관습적 배경을 통해서 본 한국과 미국의 오늘
[오피니언] 관습적 배경을 통해서 본 한국과 미국의 오늘
  • 당진신문
  • 승인 2021.07.02 18:18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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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충남도립대학교수

[당진신문=김정희]

신생아의 기본욕구 표현방식에는 한국과 미국의 경우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적인 차이, 생활방식의 격차 등으로 점차 의사소통 방법은 달라진다. 한국과 미국의 경우 역사적인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사고방식, 생활습관, 언어행위에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은 반만년의 기나긴 세월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침략을 받아왔다. 그리고 단일문화권의 봉건주의 사회에서 불평등한 신분제도로 인간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1942년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17세기 초엽 영국민을 중심으로 유럽이민이 유입되면서 영국의 문화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를 건설했다. 이민 초창기부터 미국 생활에 깊이 뿌리 박혀 내려온 청교도적 존엄성과 엄격성, 그리고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의식과 함께 인권존중 사상에 기반을 둔 미국의 교육제도를 들 수 있다. 인권존중 사상은 교육의 기회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권존중 사상의 바탕 위에 누구에게나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아에서부터 출발하는 사회에서 “상관적 사고방식” 보다는 “분석적 사고방식” 이 권장되어 사물을 보는 눈은 물질적이고, 실험적으로 되었다. 철학적으로는 실용주의, 정치적으로는 평등주의, 경제적으로는 경쟁주의가 발달하게 되고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합리주의나, 보편주의가 뿌리 박혀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끊임없는 외침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함은 물론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삶에 얽매이고 시달려 왔다. 유교의 지배자 위주의 사고 밑에서 살아온 개인은 전혀 자아를 실현시킬 여지가 부족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나아가서는 연장자에게, 국가 생활에서는 왕, 귀족, 양반 등의 특권계급층에 시달리고 인격은 거의 무시당한 존재였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는 체면이라는 가면 밑에 억압당해야 하고 어린이들은 자기 의견을 소신대로 발표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신경쓰고 자신의 의사표시를 주저한다. 

서양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를 죄악감 문화라 한다면 동양의 이런 체면주의 문화를 수치감 문화라고 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개인보다는 단체를, 실리보다는 명리(命利)를 중시했다. 예를 들면 미국인이 “My Country, My Home, My Friend” 일 때 한국인은 “우리나라, 우리집, 우리애인” 이라고 한다. 미국인에게 당연한 개인주의란 말이 한국인에겐 어색한 말이 되며 그것은 단체의 규율을 무시하고 외톨이가 되는 나쁜 의미의 성격을 뜻하는 말로 들린다. 미국인의 실용주의는 어떤 고정적인 이데올로기나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처해 나가는 가치기준을 갖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최대의 우방으로 알고 있으므로 당연히 미국도 한국을 그렇게 알아 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우리가 믿고 있는 만큼 한국을 대하고 있지 않음도 이런 실용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만 할 것이다.

또한 일본은 한국과 미국의 틈새를 비집고 아시아의 패권을 움켜잡기 위해서 미국을 등에 업고자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전략적으로 직접 뛰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시대에도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기본 원칙으로 하는 생존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반드시 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