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자리로 불리던 명당...능안 이의무 묘 및 신도비
왕릉자리로 불리던 명당...능안 이의무 묘 및 신도비
  • 이석준 수습기자
  • 승인 2021.06.05 11:00
  • 호수 13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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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송산면 도문리 이의무 묘 및 신도비
이의무 묘 및 신도비가 있는 능안 묘역 일대
이의무 묘 및 신도비가 있는 능안 묘역 일대

[당진신문=이석준 수습기자] 당진 지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문화유적지가 많다. 예산이 투입돼 활발하게 복원되고 관리되는 곳들도 있으나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역사문화유적지도 있다. 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당진의 역사문화유적지를 조명해보려 한다. 지역 내 역사·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

이순신, 이율곡을 배출한 덕수 이씨 가문의 문신인 이의무는 조정에서 30년 관직 생활을 했음에도 재산이 조금도 없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당대에는 청빈함의 상징이었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 관여했을 정도로 당대의 뛰어난 문신이었던 이의무는 홍주 목사로 부임해 당시 말을 키우던 목장이 위치해 있던 송산면 부근을 순회하던 중 지금의 능안골 능안마을 일대를 명당으로 점찍었다. 

이후 이의무가 점찍었던 명당자리에 아들 이행이 이의무의 묘역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능안 일대는 덕수 이씨의 묘역으로 조성됐다. 송산면 도문리 일대에는 능안과 관련된 민담이 전해져 내려온다.

능안 이의무 신도비. 송산면 도문리에 위치한 덕수이씨 연헌공파 묘역에 위치한 이의무 묘 및 신도비는 충남도 기념물 제185호로 지정돼있다.
능안 이의무 신도비. 송산면 도문리에 위치한 덕수이씨 연헌공파 묘역에 위치한 이의무 묘 및 신도비는 충남도 기념물 제185호로 지정돼있다.
능안 이의무 묘역
능안 이의무 묘역

예로부터 지금의 삼월리와 도문리 일대에는 왕릉 자리로 쓸 만한 명당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조정에서 이 소문을 듣고 풍수지리에 능한 명사를 파견해 왕릉 자리를 찾게 했다. 조정의 명을 받은 명사는 지금의 기지시리에 위치한 구릉에 올라 산세를 두루 살폈고 그 결과 명당인 지금의 능안을 발견했다.

풍수지리에 능한 명사가 명당 지금의 능안을 찾아왔으나 도착하고 나니 그제야 이곳은 이미 덕수 이씨 가문의 묘역으로 정해져 있었음을 알게 됐다. 

덕수 이씨의 선조와 친분이 깊은 관계였던 명사는 지금의 능안이 명당임을 알면서도 산의 형세를 일부러 명당이 아닌 것처럼 그려 조정에 보고했고, 이곳은 그대로 덕수 이씨가문의 묘역이 됐다. 이후 이곳의 지명을 (왕릉) 능이 아니라는 뜻에서 능안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능안 일대에는 이와 내용은 조금씩 다른 민담들이 다수 존재하나 이야기의 결말은 항상 왕릉급의 명당인 덕수 이씨가문의 묘역 일대가 왕릉이 될 뻔 했으나 우여곡절 끝내 왕릉급 명당이 아니었다거나 또는 왕릉급 명당이 아닌 것으로 위장하게 되고, 이후부터 왕릉(능)이 아니라는 뜻의 능안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결말로 끝난다.

능안과 관련된 민담을 통해 당시 능안에 위치한 덕수 이씨 묘역 일대가 왕릉에 근접할 정도로 좋은 명당자리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대의 명문가이면서도 청빈함을 내세운 덕수 이씨 가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민담의 형태로 전래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남광현 문화재 팀장은 “능안은 뒤쪽이 창택산과 구릉으로 이어지고, 앞쪽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풍수지리의 명당자리였음은 확실하다”며 “지금은 비록 간척지로 변해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조선 시대에는 창택산에서 능안 앞쪽 바다를 바라보면 마치 산이 푸른 연못을 감싸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삼월리 회화나무
삼월리 회화나무

이의무의 아들인 이행은 성균관 관직에 이어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홍문관 대제학, 사간원 대사간직을 거친다. 이후 갑자사화, 폐비 윤씨 복위 반대 등 정치적 위기를 겪으며 여러 차례 귀양길에 올랐다. 말년에 송산면 능안으로 낙향한 이행은 삼월리 회화나무를 심는다.

삼월리 회화나무는 약 500년의 수령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 가치가 높아 현재는 천연기념물 317호로 지정됐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라고 불리며 당대의 사람들은 집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자손이 번영하고 집안에 큰 인물이 태어난다고 믿었다.

자손이 번영하고 큰 인물이 태어나길 바래왔던 이행의 바람대로였을까. 덕수 이씨 가문은 100여 명의 문과 급제자와 7명의 정승, 6명의 대제학, 4명의 공신을 배출한 가문이 된다. 

조선 후기에는 청백리로 이름 높고, 학문의 깊이가 깊어 동악시단을 형성했을 정도로 당대를 풍미했던 이안눌을 배출했으며 근현대에 와서도 남만주 지역에서 항일 독립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종혁을 배출하기도 했다.

덕수 이씨 연헌공파 사당인 연헌재
덕수 이씨 연헌공파 사당인 연헌재

조선 시대에는 명당으로 이름났던 능안은 불과 일이십 년 전만 해도 당진지역 초등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많이 이용됐다. 현재는 능안 묘역 일대가 능안 생태공원으로 정비돼 지역주민들의 공원이자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송산리를 방문한다면 능안에 들러 왕릉급의 명당으로 불렸던 능안 묘역을 둘러보는 것이 어떨까. 더불어 잘 정비된 연헌재와 능안생태공원을 지나 삼월리 회화나무까지 방문해 본다면 능안 일대가 왜 당대의 명당으로 불렸는지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