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산성이 있었나?”...잠들어 있는 ‘성동산성’
“여기에 산성이 있었나?”...잠들어 있는 ‘성동산성’
  • 오동연 기자
  • 승인 2021.03.14 09:30
  • 호수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진의 역사문화유산을 찾아서
①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산성 (성동산성)
성동리로 향하는 32번국도의 ‘성동산성’ 표지판. 역사유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기심이 들법 하다. 이 표지판 이후에는 별다른 이정표나 안내표지판이 없어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성동리로 향하는 32번국도의 ‘성동산성’ 표지판. 역사유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호기심이 들법 하다. 이 표지판 이후에는 별다른 이정표나 안내표지판이 없어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당진신문=오동연 기자] 당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문화유적지가 많다. 예산이 투입돼 활발하게 복원되고 관리되는 곳들도 있으나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당진의 역사문화유적지를 조명해보려 한다. 지역 내 역사·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는 한편, 관리나 보존이 잘 되고 있는지 점검해 본다. (격주 연재)


*성동산성은 합덕제의 기원설과도 연관이 있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867-936)이 기병 및 보병 9천명과 군마 5백여마리를 합덕 성동산에 주둔시키고, 군마의 음용수와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한 관개시설로 못을 만든 것이 합덕제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백제 견훤부대가 삽교평야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성동리에 산성을 구축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성동산성에서 쏜 견훤의 화살이 삽교천 넘어 왕건이 주둔하고 있던 예산 신암면 용산까지 날아갔다는 (매우 과장된)전설도 있다.

실제로 성동리산성 문화재 정밀지표조사 결과 산성 내부에서 9세기 주름무늬 병 모양의 그릇파편(소병편)과 기와편 등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산성의 축조와 사용시기는 견훤이 활동했던 통일신라시대 말에서 고려 초기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성동산성은 1894년 동학 농민혁명 때 홍주목사 이승우가 성동산성에 홍주 관군을 파견해 동학 농민군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참고- 합덕수리민속박물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산성’ 기대하고 갔다가 헤매고 실망만... 
제대로 된 안내표지판 없어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를 지나는 32번국도(예당평야로)를 지나다보면 ‘성동산성’이라는 황토색의 표지판이 있다. 

100미터 전방에서 우회전해서 1km라는 거리 표시다. ‘여기에 산성이 있었나?’하는 생각과 함께 찾아가 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성동산성이 어딘지 알려주는 이정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성동리 마을로 들어서면 몇몇 갈림길이 나오는데, 성동산이 어딘지 방문객이 찾기는 쉽지 않았고, 마을 주민에게 물어 성동산 입구에 도착했다. 성동산(성재산) 입구에 위치한 표지판에도 성동산성 표시는 전혀 없다.

마을로 들어서면 몇몇 갈림길이 있지만 방문객에게 성동산이 어디에 있는지 알리는 이정표는 없다.
마을로 들어서면 몇몇 갈림길이 있지만 방문객에게 성동산이 어디에 있는지 알리는 이정표는 없다.
성동산 입구의 종합안내도에도 성동산성에 대한 내용은 없다.
성동산 입구의 종합안내도에도 성동산성에 대한 내용은 없다.

성동산은 높지 않고 등산로가 조성돼 있어 오르기에 힘들지 않다. 그러나 산성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알려주는 이정표는 전혀 없어, ‘성동산성’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방문객은 헤매기 마련이다. 

산 정상에도 올라가 보고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아~ 여기가 산성 터 구나, 저곳이 성의 흔적이구나”하고 알아차리기 어렵다. 기자는 성동산을 헤맨 끝에 한자로 “당진 성동리성지(터)”라고 씌여있는 작은 비석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곳에도 산성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또한 이 비석 인근 등산로에는 누군가가 언제 버렸을지도 모르는 적지 않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당진 성동리 성지(터) 라고 적혀있는 비석 외에는 별다른 안내 표지판은 없다. 비석은 1980년대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진 성동리 성지(터) 라고 적혀있는 비석 외에는 별다른 안내 표지판은 없다. 비석은 1980년대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산 등산로 중에는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성동산 등산로 중에는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토성의 흔적을 일반인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으려면, 무성한 풀과 잡목을 제거하고 안내표지판도 설치해야 할 것이지만, 특별히 관리가 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성동산성이 문화재 지정이 돼있지 않을 뿐더러 사유지라 당진시에서 관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

사유지라 당진시 관리 어려워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전시관에는 합덕제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후백제 견훤 부대가 주둔한 군마의 물을 먹이기 위해 합덕방죽을 조성하기 시작했다는 등의 전설이 있는 만큼, 성동산성에서 수집된 기와 및 토기 조각도 전시돼 있다. 즉 성동산성은 합덕의 대표적 명소인 합덕제와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관 장소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성동산성 터에서 발견된 기와, 토기 조각들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성동산성 터에서 발견된 기와, 토기 조각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장영란 문화관광해설사는 “성동산성은 토성이라 일반인들이 흔적을 거의 찾기 힘들고 사유지라, 관광객들에게 방문을 추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소수 학술 연구가들이 가끔 현장을 찾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시관에 전시된 것은 성동산성에서 나온 소병편(작은 주전자·그릇 조각)으로, 출토유물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진시 문화재팀 이상식 학예연구사는 “지난 2005년 성동산성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한 바 있고 2017년 당진시와 동방문화재연구원이 ‘당진의 성곽’ 조사를 하기도 했으나 사유지라 발굴은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토기 조각 등 유물은 지표면에서 수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성동산성은 현재 국가나 충남도 혹은 당진시의 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며 “역사성은 중요하지만, 사유지라 (당진시가 관리하는데에는)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현장을 방문했을 때 토성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돌로 쌓은 성이 아닌 토성인데가 따로 안내표지판이 없으며 수풀이 우거져 육안확인이 어렵기 때문. 토성의 흔적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훼손된 것일까.

분명 성동산에는 토성 흔적이 남아있다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힘들다. 안내표지판도 없는 상황.
분명 성동산에는 토성 흔적이 남아있다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힘들다. 안내표지판도 없는 상황.
분명 성동산에는 토성 흔적이 남아있다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힘들다. 안내표지판도 없는 상황.
분명 성동산에는 토성 흔적이 남아있다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힘들다. 안내표지판도 없는 상황.

문화관광과 남광현 문화재팀장은 “산성의 흔적들은 존재하고 있지만 범위가 넓고 토성이라 일반인들의 눈에는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지표조사 결과 공주 백제시대의 유물이 나왔었고, 견훤 전설들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05년경 당시 합덕제 복원과 맞물려 성동산성의 문화재 지정 움직임이 있었으나 주민의 입장이 제각기 달랐고 공감대 형성이 안됐었으며, 토지주가 여러명이라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문화유적지도 분포상에 성동산성이 있고, 매장문화재보호법이 적용돼 개발을 할 경우 시·발굴 조사를 해야하는 등 함부로 개발을 못하는 곳이며, 성동산성은 보존은 되고 있지만 시에서 정비하거나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풀과 나무로 가려져있지만)산성 흔적은 많이 훼손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며, (만약) 발굴조사를 해보면 많은 부분이 남아있을 것”이라며 “비지정 문화재지만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곳이며, 문화재로 지정하려면 주변 건물 높이 등 제한이 걸리기 때문에 토지주와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당진시 문화관광과에 따르면, 당진지역에 산성은 40여개가 있으나,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성동산성은 후백제 견훤이 축조했다는 전설 그리고 합덕제와도 연관이 있는 스토리텔링적 요소가 있고, 동학농민운동 등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특별히 관리되고 있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산성’이 있다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기자처럼 현장을 방문할 수도 있다. 

성동산(성재산)은 해발고도가 67미터로 비교적 낮은 편이고 등산로가 조성돼 있어 오르기도 힘들지 않고, 합덕제나 버그내순례길 등과도 멀지 않다. 

실제로 네티즌 중에는 성동산을 방문했으나 표지판이 전혀 없자 산성에 대해 인근 주민에게 문의해 토성의 윤곽을 추측하고 왔다는 후기도 있었다. 또한 네이버 역사 관련 카페에는 성동산성을 찾아 가 헤매다가 토성 흔적을 확인하고 걸어서 합덕수리박물관까지 다녀갔다는 후기를 남긴 경우도 있다. 

2022년 말 서해선복선전철이 개통되면 당진합덕역과 가까운 합덕제와 합덕수리 민속박물관의 관광객이 늘어날 수 있고, 인근 문화유적지와 관광지에 대한 관심과 발길도 늘어날 수 있다. 

성동산이 시유지 였다면 성동산성의 모습은 잘 관리가 됐거나 복원돼 관광객들이 한번 들러볼만한 코스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성동산성은 관광객들에게 방문하기를 추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성동산이 사유지라 당진시가 직접 관리하지 못하고 있고, 산성 터를 정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성동산성’에 관심을 갖고 현장을 찾은 이들에게 마을에서 성동산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성동산 내에서 산성의 흔적이 어디인지 안내하는 최소한의 안내 표지판 설치를 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당진시 문화재팀 관계자는 “성동산이 사유지라 표지판 설치에 어려움이 있으나 가능한 곳이 있는지 확인해 안내 표지판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