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린 당진북부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김혜린 사회복지사(당진북부사회복지관)
김혜린 사회복지사(당진북부사회복지관)

[당진신문=김혜린]

네이버 국어사전에 ‘선의’라고 검색해보면 다양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 예문 중에 “나는 선의로 한 말인데, 너의 마음이 상했다면 용서해 주기 바란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이 짧은 문장에서 두 가지의 오류를 발견했다. 상대가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내가 어떤 생각으로 그 말을 상대에게 했던 간에 그것은 더 이상 선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또 상대에게 잘못을 했을 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과 뒤에 “용서해줘”라는 말을 붙인다. 어째서 꼭 용서해달라는 말을 덧붙이는가. 용서를 하고 말고는 상대가 결정할 일이다. 정작 상대방은 용서할 마음도 없는데 오히려 가해자가 용서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선의가 폭력으로 번지는 경우다. 자기 멋대로 상대와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 나름대로 선의라고 포장하여 상대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가까운 일상에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힘들고 지쳐 그저 위로받고 싶었을 때, 친구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내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이유로 동네방네 내 비밀을 떠들고 다녔던 경우, 항상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지나친 관심과 걱정을 하는 경우, 원하지 않고 필요도 없는 선물로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경우 등 당사자의 의사는 하나도 존중받지 못하고 선의라는 이름 아래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일삼는 사람들의 가장 무서운 점이 있다. 바로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한 행동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고 그런 자신을 굉장히 자애롭고 좋은 사람으로 여기며 본인의 자존감만 높이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자신에게 상대도 똑같이 해주길 바라며 그렇지 않으면 혼자 실망한다. 누군가는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나무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원치 않는 선의가 반복되고 부담감이 쌓이다 보면 과연 선의가 선의로 받아들여질까?

복지현장에서도 이런 폭력은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분들을 보면 대게 일단 안쓰럽게 바라보며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려 한다. 

내가 봐온 장애인분들 중에는 활동적이며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아주 많았다. 그 어떤 누구도 장애라는 이유로 그분들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자주하는 실수가 장애인분들을 동의 없이 도와주려는 행동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의에 의한 폭력이 발생하기 쉽다. 가족도 가족이지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직장 동료나 친구 사이에도 쉽게 노출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지라퍼’들이 주로 가해자가 된다. 걱정이라는 이유로 바라지 않은 조언과 충고를 한다. 이건 그냥 잔소리일 뿐이고 오지랖일 뿐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일을 백번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게 배려이며 존중이다. 내가 좋다고 해서 상대도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의 삶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말자. 그들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기준과 생각 수준에 맞춘 것이다. 상대를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좋은 사람이 되고자 나의 선의에 누군가를 이용하지는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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