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나에게 제주도는 더 이상 평화의 섬이 아니다
[기획연재] 나에게 제주도는 더 이상 평화의 섬이 아니다
  • 당진신문
  • 승인 2020.11.20 19:06
  • 호수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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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이와 지윤이의 대안학교 이야기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품은 제주도...국내이동학습의 종착지...북촌 마을 4.3길

대한민국은 모두가 제각각인 학생을 대상으로 똑같은 교육을 하고 있다. 이제는 교육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당진신문에 아름숲기자단으로, 통일부기자로 기사를 내던 다은이와 같은 학교 선배 지윤이의 대안학교 이야기는 입시교육에 매몰된 교육과는 다른 즐거운 공부에 대한 것이다. 서툴지만 궁금해지는 두 친구들의 이야기로 편견 없이 대안적 교육을 경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대안학교 학부모 김영경  ※이 기획 기사는 2020년 12월까지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에 연재됩니다.


이지윤 간디중학교 2힉년
이지윤 간디중학교 2힉년

[당진신문=이지윤 간디학교 12기]

“끊임없이 4·3을 재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재기억이란 지워졌던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 끊임없이 되새기는 일. 대를 이어 미체험 세대가 그 기억을 계승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설가 현기영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인 작년 12월, 2020년을 조금 특별하게 맞이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었다. 창문을 열면 감귤 농장이 넓게 펼쳐져 온통 주황빛이던 풍경과 상큼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혀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자연이 들려주는 맑고 고운 소리를 들으며 가족들과 느리게 걷고, 여행하고, 맛있는 식사와 수다를 떨던 설레임 가득 했던 평화로운 제주.

하지만, 이번 제주의 방문은 조금 무거운 마음이다. 그동안 우리의 이동학습은 평화가 주제였고, 그것을 목표로 생태적인 삶,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해 보는 시간들을 가졌었기에 그 동안의 활동들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제주도의 평화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려 한다.

11월 7일. 수업의 일환으로 창작오페라 <순이 삼촌>을 보게 되었다. 이 오페라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실제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공연장 한쪽 객석에선 유가족들의 탄식과 울음소리가 중간 중간 들려왔다. 3시간정도 되는 공연 내내 몰입과 긴장으로 공연이 끝났을 땐 온몸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는 왜 이리 많은 걸까, 이런 참혹한 사건이 어떻게 30년 넘게 알려지지 않을 수 있던걸까, 이념의 색을 빨갛고, 파랗고로 나눌 수 있을까, 국가권력에 의한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극중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 남은 순이 삼촌의 삶이 쓰려져 가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과연 우리는 제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에메랄드 빛 바다, 태초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우거진 숲과 아름다운 꽃밭, 해안가마다 늘어선 분위기 있는 카페, 환상적인 일출과 일몰, 유명한 맛집. 머릿속에 나열되는 제주도의 이미지다. 공연 관람 후, 그동안 아름다운 제주만 보았지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품은 제주는 들여다보지 못한 나의 소비형 관광에 많은 후회가 들었다. 많은 생각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프로젝트를 위해 4개조로 모둠을 나누었다.

우리 조는 그 당시 사람들의 두려움의 기억과 생존을 위한 흔적이 남아 있는 제주 4.3길에 대해 사전 조사를 했고, 이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현장을 걸으며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추모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거리 7km의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북촌 마을 4.3길의 시작은 너븐숭이 4.3기념관 부터였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역사를 지닌 곳인 듯, 모르면 그냥 지나칠 만한 곳이다. 이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는 것은 희생자의 이름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 명판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억울한 죽음 앞에 오랜 시간 침묵하며 슬픔을 참아야 했던 그 상처를 우린 어떻게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그 두려움과 세상의 외면 속에 그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서있지도 못 한 채 널브러진 비석들 사이로 순이 삼촌의 글귀들을 찬찬히 읽어본다. 아직 따듯한 온기가 있는 제주의 11월. 수많은 이름 없는 무덤에 희생된 이들이 잠든 그곳의 푸르른 풍경이 너무 생생하게 와 닿아 더 슬픈 날이었다.

이제 나에게 제주는 더 이상 평화의 섬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고단한 고통과 어떤 이의 절규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아픈 이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진실한 사과와 위로가 있어야지만 진정한 평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 4.3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혼잡한 지금, 고성에서 파주까지 평화순례길, 부산에서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뮤지컬 및 연극치유), 제주 평화살이. 여기까지의 긴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보이지 않는 어떤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지, 또한 슬픈 역사 앞에서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많은 질문들을 던져 보았다.

3달동안, 12기 친구들과 부대끼며 끊임없는 갈등 속에 내 안의 평화를 들여다 보는 귀중한 시간을 보냈다. 나를 살피고, 서로를 살피며 우리는 이곳에서 평화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