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현숙

[당진신문=신현숙]

사람에게는 기억이라는 기능이 있다.  살면서 겪는 헤아릴 수 없는 경험들을 머릿속에 보존하거나 되살리는 역할이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이지만 가끔 현재의 나를 망설이게 한다. 떠오르는 기억에 거부감이 들어 지금을 멈춰버리면 시간은 과거에 머무르게 된다.

어릴 적, 집 앞에 개를 키운 적이 있다. 널빤지로 대충 만들어진 개집 주위는 항상 너저분했다. 마찬가지로 지저분한 녀석이었지만 거리낌 없이 쓰다듬을 정도로 함께한 시간은 길었다. 등굣길에 함께 걷다 스스로 정해놓은 곳에 이르면 멈춰 내가 사라질 때까지 꼬리를 흔들어 댔다. 돌아오는 길에도 보고 뛰어온 것 인지 아님 내내 그 자릴 지켰는지 모르지만 마중까지 와주는 듬직한 녀석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인가 개 집 주위가 휑했다.  마실갔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집에 들어섰고 역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곧장 뒤돌아 밖으로 나왔다. 눈에 보이는 건 빛이 들지 않는 허름한 개집이었다. 상황판단이 됐을 땐 그 어른들을 향한 분노 그리고, 대신한 죄스러움은 내 몫이었다. 녀석이 내겐 친구였는데 어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거였다. 슬픔은 생채기가 되어 각인되었다.

재작년 즈음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후 딸의 바람은 하나였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것. 먹이도 주고 마당에서 같이 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동물을 키울 때 생기는 나쁜 점들을 들며 넘어가곤 했다.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헤어짐이든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있을 것이고 내 기억처럼 슬픈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내 마음보다 딸아이의 바람이 더 큰 것이었는지 작년 크리스마스 전날 덜컥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와버렸다. 

입양하는 조건은 하나였다. 딸이 고양이의 엄마가 되어 양육에 필요한 노동을 책임을 진다는 것. 허나 몇 달 뒤 학교 때문에 딸은 집을 떠나야 했고, 양육은 딸의 바람을 외면하지 못한 내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다행히 딸이 없을 땐 고양이는 숨어 다니기 바빴다. 먹을 것과 최소한의 공간만을 허락한 주인과 자신을 돌봐줄 집사가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고양이와의 동거가 시간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간 속에 고양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자주 다녀가던 딸이 뜸해지자 조금씩 내 주위에 머물며 태세전환을 한 것이다. 뒤를 따라다니고, 외면하고 누워있으면 발가락까지 깨물었다. 혼내려 쳐다보면 작은 울음으로 눈을 맞추자고 다가왔다. 비비기도 하고 벌러덩 자신의 배를 내보이며 집사영입을 위해 노력 모습이 밉지는 않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러던 중 고양이의 행동이 사뭇 달라졌다.  늘어진 걸음과 몸뚱이를 긁는 행동, 얼굴 여기저기에 작은 피딱지들이 자꾸 늘어갔다.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서글픔이 베인 눈망울에는 보이지도 않는 눈물까지 담고 있었다. 동물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고양이에게 건넨 말 “많이 아팠겠구나.”
기억 속 어딘가 묻혀있던 개의 모습이 내 눈가를 건드렸다.  아팠을 녀석이 고양이의 눈을 지나 의사의 목소리로 내게 찾아왔다.  

내가 했어야 했던 말이었다.  나누어 받았던 정(情)에 감사하고 작은 힘으로 어찌할 수 없던 이별을 치유했더라면 슬픈 기억이 아니라 다정했던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기억은 인연이 다가왔을 때 먼저 베풀 수도, 더 많이 사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치료 후 집으로 돌아와 녀석을 내려놓았다.  잠시 멈칫하다 제 작은 집으로 기운 없이 움직이는 모습에 좋아하는 간식을 꺼내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많이 아팠지? 이젠 아프지 마.”   

늦었지만 보고 싶은 개에게, 눈앞의 고양이에게 인사했다. 이 말 못하는 짐승은 먹이와 함께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아프지 않고 간지럽기만 한걸 보니 이 녀석에게 정을 나누어 줄 차례인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채워지는 만큼 덜어지는 게 기억의 그릇일 것이다. 채워져야 한다면 핑크빛 꽃송이가 다발이었음 하고, 덜어내야 한다면 다시 꽃이 될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줄 갈잎이 되어 떨어지길 바라본다.


※이 글은 나루문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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