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예술원 39대 회장 이근배 시인
서라벌예대 장학생으로 입학...김동리, 서정주 교수의 가르침 받아
196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을 시작으로 문단 최초 신춘문예 5관왕
“예술원 회원 입회 절차 까다로워...회원 모두 한국 예술의 상징적 인물” 

[당진신문=배창섭 기자] 당진 출신으로 대한민국예술원회장으로 취임한 이근배 시인. 당진신문은 지난 7월 28일 이근배(80) 대한민국예술원회장을 만나 예술원 이야기와 그가 살아온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근배 시인의 출생일은 3월 1일이다. 유학자인 할아버지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가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출생일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후 어린 날 할아버지 품에서 천자문을 읽으며 자랐고, 벼루의 먹 냄새와 한적 냄새를 맡으며 글쓰기의 첫걸음을 뗐다.

이근배 시인은 “삼촌이 빌려온 이광수, 심훈, 박화성 등의 소설을 훔쳐보다가 소설가의 꿈을 키우고 서라벌예대 장학생으로 입학해 김동리, 서정주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며 “정작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 할 때는 소설보다는 정지용, 서정주의 시에 빠져 시 쓰기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근배 시인은 196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묘비명>이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벽>과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압록강>이 당선됐다.

이때를 회상하던 이근배 시인은 서라벌예대 재학 시절 시 창작 강의를 하던 박목월 시인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 장소에서 “오 바로 너였구나. 어쩐지 시어가 참 곱고 신선해서 네가 아닌 가 했었다”라며 칭찬을 했다고 한다.

이후 196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보신각종>,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선 동시 <달맞이꽃>이, 19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북위선>이 당선되며 문단 최초 신춘문예 5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등단 작품들의 모티브는 성장기에 아프게 겪은 항일, 분단, 전쟁 그리고 4·19혁명을 몰고 온 시대적 고뇌와 바람이다. 특히 시 ‘북위선’ ‘노래여 노래여’, 시조 ‘벽’ 등은 우리나라의 분단을 테마로 한 대표작이다. 광복 50주년, 60주년 칸타타 작시를 비롯해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의 축시나 김동리, 박경리 등 문단 큰 어르신들의 영결식에서 조시를 읽기도 했다.

“예술원은 퇴역 예술인의 단체? 큰 오산”

예술원 회원이 되기 위한 입회 절차는 상당히 까다롭다. 예술원 전체 분과는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 네 분야로 그 분야에서 30년 이상 예술발전에 상당한 업적을 쌓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고 있다. 회원 한명 한명이 다 한국 예술의 상징적인 인물인 셈이다.  

이근배 회장은 “1954년 7월 17일에 창설한 예술원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께서 추진해 만들어진 국가기관으로 현재 예술원 회원은 87명이며 평균 연령은 84세이고 종신 회원제”라며  “예술원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문화관광부 소속의 건물 내에 있고, 회원에게는 연금 형식의 실비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원로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퇴역 예술인들의 단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며 “각 분야별로 최고의 업적과 명성을 가진 분들로 단순히 나이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현역으로 활동하는지 여부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은 이제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원로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기관이라고 잘못 아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90세가 된 음악분과 황영금 여류 소프라노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공연을 하고 94세의 문학분과의 김남조 선생은 최근에도 강연과 국회 시낭독회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정부 예산 확대 및 단독청사 필요”

이 회장은 “문학 등 순수 창작 예술에도 예산이 많이 투입돼야 한다”며 “프랑스 학술단체인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예를 들며 예술원이라고 하는 것이 그 나라의 국격이 될 수 있도록 예술원의 사회적 제도 및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원 대신 ‘종신회원’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고 국가 차원의 사회적 예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 특히 우선 개선할 문제로 예술원의 독립청사를 거론했다. 현재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원은 대한민국학술원과 청사를 공유하고 있다.

이근배 회장은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건물은 대한민국학술원과 함께 사용하고 있어 예술원 회원들이 사용할 개별적인 공간이 부족하다”며 “정부 청사의 세종시 이전으로 인한 빈 공간이라도 정부가 제공해줄 수 있지 않겠나, 정부에 계속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향에 내려가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는 이근배 회장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컬렉션(골동품)의 활용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근배 시인은 “심훈선생의 ‘그날이 오면’ 초판본을 비롯해 ‘상록수’, 김대건 신부의 저서 및 관련된 책(희귀본), 구봉 송익필 선생의 책과 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벼루 등 1000여점의 벼루를 소장하고 있다”며 “제가 소장하고 있는 것을 모두 모으면 문학관 2개 이상 분량으로 특히, 남포벼루의 산지인 보령시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벼루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근배 회장은 “내가 병이 들어 못 움직이지 않는 이상 현역이고 지금도 창작 활동을 하고 있고, 고향 당진을 비롯해 어느 곳이던 강연요청이 있다면 달려가겠다” 며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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