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단서 유감 
[오피니언] 진단서 유감 
  • 당진신문
  • 승인 2020.06.27 02:20
  • 호수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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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굿모닝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전문의/순천향대 의대 외래 교수
박경신 굿모닝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박경신 굿모닝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당진신문=박경신]

최근 층간 소음이나 말 다툼에도 정신과를 방문해 진단서를 요구 하는 환자가 많이 늘었다. 

의료법엔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자신이 진찰하거나 검안한 자에 대한 진단서·검안서 또는 증명서 교부를 요구받은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환자가 원하는 대로 진단명을 써줘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폭행이나 사소한 말다툼이면 조사해서 불법 행위를 처벌하면 되는데 진단서를 발행하면 다툼을 더 크게 하는 것 같아 나는 가능하면 진단서 발행을 자제한다. 또 상급병원에서 심리검사 등 정밀한 평가를 받으라고 하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일 할 수 있다는 진단서를 써 달라’또 어떤 사람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진단서를 써 달라’고 요구한다. 채용 담당자가 판단할 문제임에도 진단서를 받아 오라고 한다. 학교는 결석한 학생들에게, 건설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아는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책임을 떠 넘긴다. 안해 주면 의사는 야박하고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의학적 소견만 적어 준다. 나머지는 담당자들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다. 

현재 사회는 점점 자기 책임만 회피 하려 한다. 최근에는 국제결혼을 하려면 정신과 전문의의 정신병이 없다는 진단서가 필요하다. 실제로는 정신병 유무보다는 결혼해서 배우자를 잘 배려하며 갈등을 조절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인격이 더 중요 하다. 

정신병이 있어도 얼마든지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정신병이 없어도 이기적이어서 결혼 생활이 부적합한 사람도 많다. 그래도 책임을 회피 하려고 진단서를 받아 오라고 한다. 결혼 가능여부는 국가나 공무원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당사자가 자기 책임하에 결정 할 문제다. 

최근 가장 가슴 아픈 진단서 발행 요구는 젊은 지적 장애 환자다. 자기가 지적 장애가 아니라는 진단서를 받으러 내원한 적이 있다. 아직도 맘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자기가 지적 장애가 아니라는 진단서를 받으러 병원에 왔을까? 장애인 작업장을 다니는데 사람들이 무시해서 일반인처럼 공장을 다니려면 지적 장애가 아니라는 진단서 필요 할 것 같아 왔다는데 환자에게 진단서는 써 주지 못했다. 

마음이 아프다. 장애인에게 놀림이나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측은지심으로 감싸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