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와집
[오피니언] 기와집
  • 당진신문
  • 승인 2020.04.04 01:08
  • 호수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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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충남도립대학교수
김정희 충남도립대학교수
김정희 충남도립대학교수

[당진신문=김정희]

매년 사월 초파일이 되면 돌아가신 어머님의 기일이 다가온다. 부처님 오신 날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할 때면 항상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흐르곤 한다. 돌아가신 지 수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애틋하다.

어머님은 19살의 어린 나이에 가난한 농가로 시집을 오셨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힘겨운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어 삶으셨다. 그리고는 그 고사리를 광주리에 이고 십리정도 되는 산길을 걸어 오일장에 가셨다. 고사리의 물로 얼룩진 저고리 차림의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셔서는 내게 학용품을 주섬주섬 내어 주시곤 하셨다. 철없던 나는 힘들어도 공부를 가르치시려던 어머님의 속뜻도 모르고 공부하라는 시간에 동생과 함께 개울에 들어가 개구리와 가재를 잡아 구워 먹고, 얼굴에는 검댕이가 묻은 상태로 놀러 다니곤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님은 우리 두 형제를 불러 무섭게 혼내셨고 피가 나도록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셨다. 그러시고는 밤늦게 잠을 자고 있을 때 살며시 들어오셔서는 약을 발라 주시며 눈시울을 적시곤 하셨다.

따끔하게 혼내신 다음 날에는 우리 두 형제를 부르셨다. 그러시고는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에 꼭 필요한 참된 일꾼이 되도록 해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님의 소원이라고 눈물짓곤 하셨다. 어머님은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된 가난한 삶속에서도 우리 두 형제의 교육에 집중하셨고 무한한 믿음으로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언젠가는 심한 홍수가 들어 집에 양식이 떨어져 무궁화잎을 찧어서 된장국을 끓여 끼니를 대체하기도 했었다. 또한 학교 점심시간에 도시락이 없어 교내의 우물로 달려가 두레박으로 퍼올린 우물을 양껏 들이키며 배고픔을 잊도록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가난속에서도 어머님은 남의 집 감나무의 감 하나라도, 무밭의 무 하나라도 서리해 오면 벼락같이 호통을 치시며 다시 갖다 놓도록 하셨다. 그때는 그런 어머님에게 무척 화나고 미웠지만, 돌이켜보면 어린 자식에게 정직이라는 삶의 가치를 이해시키려는 어머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자식을 위해 한평생 장독대에 청수를 올리시고 촛불을 켜시면서 두손모아 간절히 기도하셨던 어머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영광스럽게도 지금은 충남도립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밤에 촛불을 밝히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다음에 꼭 성공하겠다. 그리고 참된 일꾼이 되어 평생 고생하신 어머님을 위해 그토록 살아보고 싶어 하시는 기와집을 꼭 지어드리겠다”고 결심하곤 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야속하게도 기다려 주시지 않으셨다. 대학에서 공무원 양성을 위한 수험영어를 강의하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님이 쓰러지셨다는 위급한 전갈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한달 후 부처님 오신 날을 1주일 앞두시고 어머님은 고단한 삶을 마감하셨다. 살아 생전에 어머님은 학자가 된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고, 어머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하셨다. 그리고 “꼭 가르침에 정성을 다하는 교수가 되어 학생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동안 공무원 양성을 위해 수험영어를 학생들과 토론하며 선택과 집중을 하도록 지도해 왔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심화학습실에서 학습지도와 개별상담을 하면서 학생들과 호흡하며 844명의 공무원을 배출시켰다. 지금 내 곁에 어머님은 안 계시지만, 어머님께서 당부하신 말씀들은 고스란히 나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으며 내 삶의 절대적 가치의 지침이 되고 있다.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가르치라 그리하면 존경받는 스승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 어머님께서 나에게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이다. 나는 어머님을 잃은 슬픔조차도 이 남긴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승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을 어머님의 유언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살아가고자 한다. 이러한 삶이 어머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나의 삶을 유의미하게, 그리고 가치있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어머님께 그토록 지어드리고자 했던 기와집은 이제 학교라는 큰 기와집 속에 남아있다. 학교라는 기와집 속에서 학생들의 꿈이 실현되도록 정성을 다해 가르침의 책무를 다 할 것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힘든 학생들에게는 내가 어머님에게서 받았던 따뜻한 사랑을 나누며 격려해주고, 학생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기와집을 묵묵히 계속해서 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