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된 씨앗..노선생(老先生)을 찾아온 제자의 편지
열매가 된 씨앗..노선생(老先生)을 찾아온 제자의 편지
  • 배길령 기자
  • 승인 2020.02.08 06:40
  • 호수 12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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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묵 스승에게 전달된 미호중학교 1회 졸업생의 편지
“생각지도 못한 편지..늙은이에겐 반갑고 참 고마운 일”

“지금도 천의 언덕 위에 하얀 집인 미호중학교가 폐교가 되었을지언정 저의 마음속에는 항상 아늑한 추억과 은사님의 말씀이 깃든 마음의 고향입니다”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2019년 연말, 뜻밖의 편지 한 통이 찾아왔다. 발신인은 임종윤. 여든아홉의 나이가 된 김연묵 선생의 제자이자 일흔을 앞둔 미호중학교의 첫 졸업생이었다.

김연묵 선생은 편지를 받고 며칠 전 당진으로 나가 9~10여명의 제자들과 식사자리를 가졌던 것을 떠올렸다. 고령의 나이에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될지 몰라 평소 연락을 취하고 지내던 제자에게 청을 넣어 가졌던 자리였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제자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제자 몇을 모아 같이 식사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날의 감동이 고스란히 남았지만 고령의 나이인 탓에 재회는 기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날 참석한 제자가 뜻 밖의 편지를 보내 온 것이다.

“편지를 받자마자 제자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생각지도 못한 편지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늙은이에겐 참 고마운 편지였어요”   

김연묵 선생에게 미호중학교는 특별한 학교다. 교장도 없고 교사도 몇 명뿐이었던 학교는 초창기 보리밭 벌판을 학생과 교사가 들것으로 흙을 퍼다 나르며 만든 학교였다. 

김연묵 선생은 “당시에는 당진중학교가 있었지만 정미에서 멀었어요, 그리고 미호고등공민학교가 있었죠. 66년도인가... 정식 인가를 받아 미호중학교로 바뀌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해 만에 학교에 오는 학생과 졸업 후 바로 진학한 학생들로 한 반에는 나이도 제각각이었지요”라고 설명했다.  

미호중학교는 당시 고교동창생이었던 故인수환 이사장이 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며 청했고, 농촌생활을 해오던 김연묵 선생이 도움에 나섰다. 이후 김연묵 선생은 68년에 교감으로, 85년에는 교장으로 재직했다. 

“그때는 교사자격증이 없는 선생님들이 많았지요. 나도 그중에 하나였고요. 그래도 이렇게 제자들이 기억해주고 찾아주니 미숙한 선생이어도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어요”

김 선생은 제자가 보내온 첫 졸업생들의 소식이 담긴 편지를 천천히 읽어주며 “제자들이 건강하고 또 그 자식들이 건강하고 잘 된 모습을 보니 고맙고 참 보람찬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어서 뿌듯한 편지라고 웃었다.  

1969년 2월, 1회 졸업생들은 어느덧 68~70세의 나이에 접어들어 하얗게 눈이 내린 머리칼로 50년 만에 오래전 스승을 만나 회포를 풀었다. 미호중학교는 2004년 폐교됐지만 김연묵 선생과 졸업생들의 마음에는 항상 천의 언덕위의 푸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다시 만나자는 소리는 괜스러우니 안했지요. 이제는 남은 날을 간간히 지난날의 앨범을 보며 제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고 과거의 교직생활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내 여흥거리라면 여흥이지요”


김연묵 은사님께
물 흐르듯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은사님 곁을 떠난 지가 어언 50년이 되었습니다. 항상 시간이 허락할 때 찾아뵙고 인사드린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것을 실천하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다행히 지난번 당진에서 은사님을 뵈오니 예전과 같이 자애로우시고 흩어짐 없으신 기품이 그대로이신데 다만 인생 계급장이 한두 개 더 붙어서 거동이 예전 같지 않으심이 마음을 짠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주변에서 만나는 연세 비슷한 분들과 비교하면 한 20년은 젊어 보이시니까 서운해 하시지는 마세요. 

지금도 천의 언덕위에 하얀 집인 미호중학교가 폐교가 되었을지언정 저의 마음속에는 항상 아늑한 추억과 은사님의 말씀이 깃든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곳에서 사춘기를 막 보내면서 올바른 품성을 배웠고 비록 어려움이 있기는 했으나 그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인내심을 잘 배웠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들은 후에 공부 잘하는 것 보다 사회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지내서인지 저의 아들들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큰 애는 대학 졸업 후 네이버 사를 다니고 둘째는 카이스트를 졸업 후 미국 carnegie mellon(카네기 멜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구글의 AI팀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자랑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님께서 가르치신 학생들의 자식들까지 국내외에서 훌륭하게 잘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은사님께서 뿌리신 씨앗들이 열매를 맺어가고 있으니 선생님으로서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희망사항이 있다면 은사님께서 계속 건강하셔서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가끔은 따끔한 회초리도 그립습니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 온다’는 옛말과 같이 건강도 감기, 몸살, 배탈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큰 병이 시작되오니 환절기에 부디 건강조심하시고 항상 몸을 따뜻하게 보존하시고 너무 무리하게 운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서면으로 대신하는 무례를 해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견과류가 면역증진과 노화방지에 좋다고 하여 조금 구입하여 보내드리오니 매일 조금씩 드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9년 12월 23일 서울에서 미호중학교 1회 졸업생 임종윤 배상


존경하는 김연묵 교장선생님께 올립니다.

은사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서신을 받고, 저의 내자에게도 자랑하니 무척 부러워하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은사님께서도 참 제자농사를 잘 지으셨습니다. 미호중학교 1회 졸업생만 보더라도 참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1번 박노한: 인천에서 선용품 판매사업을 잘하여 부유하게 되었고, 
2번 강사홍: 라면제조업체 농심에 다니다가 퇴직하고 성실하게 경비직을 하고 있고, 
3번 유영인: 건설업을 하여 성공한 후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고, 
4번 정덕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치부하였으며, 아들을 치과의사로 키웠고, 
5번 이명용: 부천에서 재활용품 처리업을 하다가 봉생리로 귀농하여 살고 있으며, 
13번 윤석길: 대전에서 미용재료 무역업을 하고 있으며, 
14번 유영철: 조선일보 광고국에서 근무하다가 태안으로 이사하여 잘 살고 있으며, 
15번 남기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KIST의 연구원 및 대학 객원교수로 있으며, 
16번 최명돈: 서울공대를 졸업 후 삼성그룹에 근무 후 현재 경영컨설턴트 및 저술가로, 
18번 이철용: 인천에서 미곡상회를 운영 중이며, 
19번 김인환: 인천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고, 
23번 강대식: 영등포에서 냉난방사업을 하고 있으며, 
27번 임종윤: 식품무역업을 하며 자식 잘 키우며 성실하게 필부로 살고 있으며, 
28번 이원증: 삼성전자 냉난방설비 대리점 운영하며 아들 종현에게 가업 계승중이고, 
33번 이병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며, 
34번 이선옥: 대호지농협을 다니다가 결혼하여 잘 살고 있고, 
35번 김명자: 당진시 고대면의 부농에게 시집가서 잘 살고 있으며, 
36번 전성순: 문학가로서 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고, 
37번 박성인: 서산에서 사업을 하는 부군과 잘 살고 있으며, 
38번 권철희: 윤석길과 결혼하여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고 있으며, 
40번 최춘자: 유명한 미용기술자로서 아이들 잘 키우며 살고 있으며, 
41번 김명애: 서울 성북구의 회사를 다니다가 자영업자인 남편과 결혼하였고, 
42번 이희수: 경기도 양평에서 남편과 소방설비사업을 하고 있으며, 
51번 이정순: 경기도 용인에서 자녀들과 잘 살고 있고, 
52번 허병숙: 조흥은행에서 정년퇴직 후 서울에서 산다고 하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1회 졸업생이 52명으로 기억되는데 알고 있는 친구들의 현재 동정은 기술한 바와 같습니다. 제가 동창들 한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지요? 예전에 중학교 재학 시에 동급생 이름을 한문으로 열 번씩 써오라는 숙제 덕분이지요. 

나머지 소식을 모르는 친구들도 모두 훌륭하신 은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잘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항상 감사하게 기억하고 건강하신지 궁금하지만 항상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무례를 양해하여 주시옵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곁에서 모시지는 못하지만 든든한 제자들이 주변에 건재하다고 생각하시면서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0년 경자년 1월 30일 항상 모자란 제자 임종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