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기지시줄다리기 기능 보유자
20대 초반부터 60년 이상 줄다리기 발전 위해 앞장
“박물관 하나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워”

줄다리기 행사 첫날에 행해지는 당제에서 의관을 정제한 장기천 보유자. 가지런한 모습에서 엄숙하고 정숙한 분위기가 흐른다. 사진제공=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
줄다리기 행사 첫날에 행해지는 당제에서 의관을 정제한 장기천 보유자. 가지런한 모습에서 엄숙하고 정숙한 분위기가 흐른다. 사진제공=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

“우리 지역의 젊은이들이 이 줄다리기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평양이든 개성이든 어느 곳에서라도 북에서 줄다리기를 해보는 것이 마지막 바람입니다” 故장기천(2016년 당찬사람들 인터뷰에서)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줄다리기 장기천 보유자(85)가 지난 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故장기천 보유자는 1935년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아버지(故장영남)를 따라 동네 어른들 틈에서 줄 제작법을 배우고 익히며 줄 제작에 참여했다. 

그가 줄 제작에 관심을 갖고 계승키로 결심한 계기는 3년에 한 번씩 기지시줄다리기 난장이 서던 1950년대다.

당시 그는 유일하게 큰 줄을 만들 수 있었던 안섬포구 뱃사람 故이득천 옹이 돌아가시면서 그동안 체계적인 전승과 기록 없이 근근이 이어지던 전통 방식의 줄 제작이 단절될 것을 우려해 줄 제작자의 길로 들어설 것을 결심했다고.

그렇게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하며 줄 제작을 이어오던 그는 지난 1981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81 행사 당시 기지시줄다리기를 시연해 이듬해 기지시줄다리기가 중요무형문화제 제75호로 지정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산업화 시대 줄다리기 폐지론이 고개를 들 때에도 전통을 잇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묵묵히 줄 제작에 일생을 바친 끝에 2001년 마침내 줄 제작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2006년도에 손수 망치와 정을 들고 줄틀 제작을 하고 있다.
2006년도에 손수 망치와 정을 들고 줄틀 제작을 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60년 이상 줄다리기의 발전을 위해 애써온 그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당진시민대상 수상, 2016년에는 당진의 ‘당찬 사람들’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 당찬사람들 인터뷰 당시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기지시줄다리기가 등재된 것을 가장 기쁜 일로 꼽았던 장기천 씨는 그의 소망이었던 북에서의 줄다리기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의 별세소식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장기천 보유자와 기지시줄다리기를 함께 이끌어온 구자동 보유자는 “장기천 선생은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민속을 지키는데 중요한 분이셨다. 기지시줄다리기의 역사인 박물관이 하나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평생을 줄다리기의 줄 제작을 학생들과 후배들에게 지도하면서 많은 전승자들이 따른 훌륭하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 보유자는 “20대부터 함께 줄 제작을 해온 오랜 벗이자 귀한 분을 떠나보내게 돼서 서운하지만 보존회의 전승자들이 귀중한 지역문화유산에 자긍심을 가지고 이어 오고 있다. 마음이 든든하셨을 것 같다”고 전했다. 

김병재 이수자와 줄을 점검하고 있다.
김병재 이수자와 줄을 점검하고 있다.
2010년 세계대백제전이 열린 부여 구드레 광장에서 원형줄다리기를 시연 후
2010년 세계대백제전이 열린 부여 구드레 광장에서 원형줄다리기를 시연 후

한편,  198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돼 2010년 이후로 매년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기지시 줄다리기는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전승되는 줄다리기로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놀이로 격년 음력 3월 초에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 다음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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