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았지만 눈도 오지 않는 겨울, 조금은 무료할 법도 한 아이들을 위하여 예산종합운동장에서 야외 눈썰매장을 무료로 개장했다고 하니 지난 주말 40여분을 달려 찾아보았습니다.

어른의 눈높이로 보면 조금은 시시하게 여겨질 테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만한 놀이터가 없습니다.

예상보다 제법 많은 인파가 몰려 줄을 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텝들은 안전을 위하여 곳곳에 배치됐고 대형 소형 튜브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오르고 내려올 수 있도록 잘 안내합니다.

꽤 긴 줄이지만 아이들도 어른들도 기꺼이 차례를 기다리며 썰매를 타고 내려오면서 누군가 꺄악! 비명을 지르기라도 하면 함께 소리 내 웃습니다.

누군가는 “주여!”를 외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엄마!”를 부르고, 누군가는 “할머니!”를 부르며 순식간에 끝나고 마는 시간이지만 모두들 다양한 모습으로 내달리며 스릴을 만끽합니다.

어린 시절 언니와 함께 비료포대를 깔고 앉아 언덕을 질주했던 때가 오버랩 되며 슬며시 웃음이 나는데 드디어 차례가 왔습니다.

“바닥에 앉아 다리는 밖으로 빼시는 게 좋아요.”

스텝의 안내에 따라 엉덩이 바짝 대고 철퍼덕 앉아 발을 내밀고 출발해봅니다. 낮고도 짧은 거리여서 1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스릴이 느껴져 깜짝 놀랍니다. 비료포대에 걸터앉아 높다란 언덕을 내달릴 때 느꼈던 그 스릴을 오래간만에 맛보니 반갑습니다.

두 번째 순서를 기다리는데 다섯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손자가 할머니와 함께 정상에 올라 순서를 기다립니다.

“할머니랑 같이 타고 싶어요.”

“할미는 허리가 아파서 못 타. 울 애기는 씩씩해서 혼자서도 잘 탈 수 있지?”

그렇게 할머니는 손자 튜브를 힘껏 밀어주고는 서둘러 돌아서 걸어 내려갑니다. 일 나간 부모를 대신해 그렇게 할머니는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신바람 난 손자 녀석 한번이라도 더 태워주고 싶으니까 휴게소에 의자가 마련돼 있었지만 할머니는 앉을 수 없습니다. 시린 손 비벼대면서도 뜨끈한 어묵 한 컵 대할 시간도 없이 손자 시중을 듭니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겠네!’

“할머니, 싱싱 달려주세요. 재미가 없잖아요.”

낡아 못쓰게 된 빨간 고무다라이에 구멍을 내고 밧줄을 끼워 손잡이를 만들어서는 꽁꽁 얼어붙은 영희네 논바닥에서 막내 손녀딸을 태우고 힘겹게 끌어주시던 할머니에게 감사 대신 불평하며 다그치던 시절이 있었네요. 해가 져 어둑어둑해지도록 집에 돌아갈 생각조차 없이 끌어라, 밀어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주문에도 웃음 잃지 않으시던 내 할머니의 사랑을 그분에게서 봅니다.

어른이 자꾸 타면 어린아이들 기다리는 시간 더 길어질까 싶어 절제하고 대하는 어묵 한사발이 꿀맛입니다.

“워디서 오셨대유?”

“우리는 예산사람이유. 우리 애기들이 이날만 손꼽아 기다렸다니께유. 돈 주고 가는 썰매장이 있기는 허지만 4명이 갈라믄 그것도 부담이니께유. 집 가차운디 이렇게 다 공짜로 태워주니께 참말로 감사허쥬. 울 애기들 매일 오자고 난리유.”

“당진에서 왔어요. 예산 사는 분들이 부럽네요.”

“우리는 무료개장 소식 듣고 서산에서 왔어요. 서산에도 스케이트장이 거의 무료다시피 하게 운영하고 있어서 인기가 좋은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스케이트는 무서워하고 눈썰매를 좋아해서 와봤네요. 어른들이 볼 때는 시시해 보이는데 아이들은 좋은가 봐요.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먼 길 온 보람 있네요. 날씨도 좋아서 출렁다리랑 주변을 더 돌아보고 예산사과가 유명하잖아요. 사과도 사고 저녁도 먹고 돌아갈 생각이에요.”

예산군민은 물론이고 많은 분들이 타 지역에서 이곳을 찾았고 썰매장 뿐 아니라 예산 곳곳을 돌아볼 계획이라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니 작은 것을 투자하고 큰 것을 낚을 줄 아는 예산군이 지혜롭다 여겨집니다.

예산종합운동장에 설치된 이곳 썰매장은 1월 11일부터 2월 9일까지 30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만 5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 이용이 가능하고 우천 시 휴장한다니 참고하시구요, 장갑 등 개인 방한용품은 준비해 가시되 튜브를 어른용 어린이용 모두 무료대여 해주니까 개인 썰매는 준비해 가지 않아도 됩니다.

방학 맞아 무료해 하는 아이들과 주말 한번쯤 방문하셔서 썰매를 타고 달려야 느낄 수 있는 상쾌함도 맛보고, 요즘 전국에서 찾고 있는 출렁다리도 걸어보면서 예쁜 추억 만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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