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농부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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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진신문
  • 승인 2019.12.21 06:00
  • 호수 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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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례 당진수필사무국장

[당진신문=전명례]

이것이 얼마만인가 사십여 년은 족히 됐다. 중학교를 마치고 어느 도시로 떠나가서 소식을 모르고 지냈으니 기억 속에서 거의 잊고 지냈던 동창생이다. 그런 그녀를 지인의 자녀 혼사에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다. 혼주가 나서서 서로 동창생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못 알아 볼만큼 변해있는 서로의 모습을 마주보며 마음이 어느새 꿈 많던 소녀시절로 돌아가서 나이도 잊고 수다가 한창이었다. 

어떻게 사는가. 어디서 사는가. 아이는 몇 인가. 끝도 없는 이야기 중에 내 수다가 그쳐 버렸다. 당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말했을 때 동창생의 반응 때문이었다.
‘너는 학교 다닐 때에 특별해서 남자 잘 만나 멋지게 살고 있을 줄 알았더니 기껏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느냐’했다. 농사가 어때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과의 대화에서까지 천시를 받아야하는가. 

이조 오백년 동안 폐단도 많았지만 농자 천하지대본이란 농업 우선 정책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흔히 사람들은 농사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안 되면 농사나 지을까.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시골 생활이나 농사가 그렇게 만만하거나 함부로 평가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농사야말로 가장 정직한 분야이고 시골생활 또한 부지런하지 않으면 때를 놓치게 되어서 낭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농업이 비젼이 없거나 사양산업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골은 이미 노령화 되어서 마을마다 육십이면 젊은이로 평가받고, 인력을 얻을라치면 일하러 오시는 분들의 평균 연령이 칠십 오세가 넘는다. 그러자니 일을 시키다가도 내가 마치 악덕업주 같은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진다. 그러나 그것도 몇 년 안에 그분들이 일을 하실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인력은 구할 수가 없을 것은 자명한일이다. 그 대안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농촌에 젊은 인력들이 시급하다. 지금처럼 농사가 이렇게 천시 받는 분야가 되어서는 어느 젊은이가 농촌에 뿌리를 내리려 하겠는가. 우리나라에 식량자급 능력은 이십 오 프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식량안보라는 위험을 염려하는 뜻있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가 점점 확대되어서 농촌을 살려야 나라가 잘 살수 있다는 자각을 숨길 수 없다. 

취업난으로 고급 인력들이 대학을 오 년씩이나 다니고 있다. 도시 인력시장에는 새벽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나와서 삼십 프로 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현실을 방송 매체에서 볼 수 있다. 저 인력이 농촌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농산물 생산을 차별화 하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농업 정책이 있어야 하겠다. 일부 뜻있는 젊은이들이 농촌을 살려 보자고 농사도 짓고 특수작물을 심어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방송을 접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소수에 불과한 일이겠고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겠다. 

젊은 시절을 도시에서 살다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시골에 대한 향수를 잊을 수 없어서 농촌 생활을 시작한지 이십년이 되었다. 처음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주민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농사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시와 때를 맞춰서 일해야 하는 고달픔은 있으나 한해 농사를 다 갈무리하고 난 뒤의 뿌듯함이란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충만함이 있다.

 새벽의 맑은 공기며 새들의 지저귐들 시절을 맞춰서 피고 지는 들꽃들 이 모든 것들은 회색 빛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골만의 호사이다. 느긋한 여유가 있고 이웃끼리 나눔이 있다. 군이나 시에서 여러 가지 지식이나 정보를 공급해 주고 있어서 조금 부지런하고 또 마음만 먹는다면 문화생활도 여러 방면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지금의 농촌이다. 

마을마다 어르신들 쉼터도 있다. 더위를 피해서 모여서 낮잠을 자거나 시사를 논하다가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다음날이면 다 잊어버리고 스스럼없이 만나서 웃는다. 겨울의 마을 공동체는 그야말로 한 가족이다. 날마다 모여서 밥을 지어먹고 윷놀이에 민화투에 시끌벅적 심심할 여가가 없다. 그렇게 어울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귀촌인 들의 다소의 노력은 필요하지만 한번 마음이 열리면 아낌없이 정을 주고 또 준다.

수고하고 가꾸지 않아도 지천으로 산나물이나 야생열매도 가득하다. 저절로 익어서 떨어지는 알밤을 줍겠다고 도시에 사는 그 친구가 찾아왔다. 일하면서 입으라며 헌 옷가지랑 도시의 부산물들을 차에다 주섬주섬 싣고서 집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시골은 낙후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여기서부터 잘못되어있구나, 싶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해줬다. 시골을 네가 자라던 그때로 생각하고 있다면 큰 코 다칠 일이라고. 

알밤이랑 갖가지 푸성귀들을 한 아름 차에 싣고 다음에는 와서 며칠 묵고 가야겠다며 친구는 갔다. 보내고 돌아서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앞으로 너는 친구 아니고 그냥 동창생이다 하고. 근본이 농촌 태생이 아닌 사람은 이십 프로 안 팍 이라 하는데 언제부터 도시 사람이라고 시골을 하대하고 있냐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농촌을 육 칠 십 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너 하고는 친구 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