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그날의 식사
[당진신문 오피니언] 그날의 식사
  • 당진신문
  • 승인 2019.12.07 06:00
  • 호수 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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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당진신문=이해인]

감사하게도 아가씨소리를 더 많이 듣는 나는 새색시이며 초보 아내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도 잠시, 어느 날 남편과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받다가 생긴 사소한 다툼이었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에 큰 상처가 생기자 흉터는 쉽게 아물지 않고 더 깊어만 갔다. 그래서 상처를 준 남편을 잠시 보지 말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다. 남편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걷고 또 걷자 막다른 골목 앞에서 멈췄다. 정신이 돌아왔다. ‘여긴 어디지?’ 길이 낯설었다. 눈앞에 처음 본 아파트가 서있었다. 이곳은 나의 고향도 아니요, 내 일터도 아닌 결혼 때문에 오게 된 낯선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든 낯선 향기가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편한 곳은 남편 품속밖에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편한 곳마저 가지 못할 때는 한없이 외로워진다. 엄마 뱃속에서 막 태어난 아이처럼 목 놓아 울고 싶어진다. 내 코끝은 이미 찡해져서 곧바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외로움이 극에 달할 때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주변이 마치 새벽처럼 어두워졌다. 그때였다. 아파트 1층에 사는 어느 가족의 식사 소리가 내 귓가에 안착했다. 수저와 밥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젓가락과 반찬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오늘 하루의 위로가 오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가족이 있는데...’ 그 집에서 나오는 온기가 내 몸을 감싸며 위로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먹는 식사가 이렇게 따뜻한 것인지 그때 알았다. 그저 피곤함에 밥을 짓곤 했는데 밥 짓는 행위가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음을 처음 느꼈다. 식구는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 굶고 있을 남편에게 돌아갔다.

지금도 가끔 외롭다고 느낄 때면 그때의 일을 떠올린다. 이름 모를 아파트 구석에 쪼그려 앉아 울고 있던 나와 그런 나를 위로해준 어느 가족의 식사 소리를. 지금은 여자로서 아내로서 더 강해졌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외롭다고 운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