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칭찬 릴레이 33] “어르신이 웃어주실 때 큰 감동으로 다가와”
[당진신문 칭찬 릴레이 33] “어르신이 웃어주실 때 큰 감동으로 다가와”
  • 배길령 기자
  • 승인 2019.11.30 06:00
  • 호수 12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희 씨의 행복플러스 일요가족
둘째 등에 업고. 첫째 손 잡고 봉사 나서...어느덧 9년차
“봉사, 익숙해진 삶의 한 부분...그만두면 많이 허전할 것 같아”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우리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남을 칭찬하는 일에 인색하고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이 보인다. 내 고장 당진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을 알게 된 이상 지나칠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입 간지러워 참을 수 없는 착한 당진 사람들의 선행을 칭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김진희 씨(41)가 행복플러스 가족봉사단에 가입했을 때, 둘째아이는 두 살이었다. 지금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으니 진희 씨의 봉사활동도 어느덧 9년차에 접어들었다.

고향 울릉도에서 남편을 따라 당진에 자리 잡고 두 아이를 키우는 보통의 엄마로 지내왔던 진희 씨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자신의 주변을 환기시키기 위한 새로운 활동이 필요했고 그 계기로 봉사단에 가입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봉사단이 다행스럽게도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가족봉사단이었기 때문에 진희 씨는 두 살배기 아이는 업고, 6살 아이는 손을 잡고 봉사를 나섰다. 타향살이에다가 따로 아이를 돌봐주는 가족도, 친구도 가까이에 없었던 진희 씨는 그렇게 당진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그때는 아이를 업고 버스를 타고가도 힘든 줄 몰랐어요. 그래도 둘째가 걸음마는 했으니까 봉사단 가족들을 만나서 다 같이 요양원을 방문하면 아이들 재롱도 보여주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면서 요양원 어르신들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달래드렸어요” 

두 아이에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진희 씨는 막내를 임신했던 때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막내의 걸음마와 함께 다시 봉사활동을 나섰다. 매달 셋째 주 일요일이면 봉사단은 효제요양원을 방문해 어르신의 말벗이 되거나 어울리며 다 같이 노래와 율동, 건강 체조 등을 하면서 아이들과 어르신의 웃음으로 요양원이 꽉 찬다.

“치매를 앓으시는 어르신도 적지 않으신데 오랫동안 방문하다보니까 우리 막내를 자신의 손주보다 귀여워해주시는 어르신도 계세요. 내 새끼, 내 강아지 부르면서 아이들을 기억해주시면 너무 감사드릴 때가 더 많죠”

진희 씨의 봉사는 요양원을 방문하거나 때때로 하천 및 산지 등에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활동으로 이어오고 있지만 이제는 중학생이 된 아이의 엄마로서 청소년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기도 하다. 4~5년 전 기지시리에 마련된 청소년쉼터에서 밤 7시부터 9시까지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해오면서 당진 곳곳에 정착될 수 있길 바랐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3년 정도 했던 거 같아요. 학교를 마치고 학원 등으로 다니는 아이들이 쉬었다 갈만한 곳이 없어서 청소년쉼터라는 공간이 만들어졌거든요. 아이들 간식으로 떡볶이나 주먹밥을 만들어주면서 과자도 사놓고 우리 아이들이 밖에서 배회하지 않도록 마련한 공간이었는데 사업이 없어지면서 다른 동네로 이어지지도 못해 많이 아쉬웠어요” 

초창기멤버로 구성된 가족들이 대부분인 행복플러스 봉사단은 외로웠던 진희 씨에게 진짜 가족만큼 더 친밀한 존재가 되어 주었다. 여러 가족이 모인 봉사단은 아이들에게도 든든한 언니오빠가 되어주면서 세상을 넓게 보는 마음도 생겼다.

“처음에는 자신의 위치가 답답하고 허전해서 시작한 봉사였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제 삶에 힘이 되는 사람을 얻고 또 살아가는데 힘을 주는 것이 봉사였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봉사는 [내 친구 누구 집에는 이런 게 있대]처럼 높고 낮음을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삶을,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고등학생 시절, 장애아동의 고아원에서 진희 씨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병으로 아픈 아이들은 더 따뜻한 품속에서 많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가기도 했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애기들의 분유를 먹이고 숟갈을 뜨기 어려운 아이들의 밥을 떠먹여주며 자신을 ‘엄마’라고 불렀던 기억들이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는 진희 씨. 오랜 기억 속에 남겨졌던 그때의 마음이 어쩌면 계속 봉사를 이어오게 하는 것 같다고...

“봉사를 그만두면 많이 허전할 거 같아요. 이미 익숙해진 삶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 어르신이 한번 웃어주실 때의 모습들이 엄청 큰 감동으로 다가오거든요. 나도 어딘가에는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해가야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