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주의 시내버스

“아침 7시면 손주는 학교를 가기위해 눈 비비며 밖을 나섭니다. 뜨거운 밥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기도 전에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나서면 밖은 아직 날도 차고 어둑한데 우리 손주를 싣고 떠나는 버스는 속절없이 아이를 재촉합니다. 그 이른 시간에 버스운전기사와 우리아이 단 둘뿐입니다. 등교가 8시 30분까지인데 우리 손주는 7시면 떠나는 버스를 타고 10분 만에 도착해서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1시간이 넘도록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당진신문=배길령 기자] 순성면 아찬리 2반의 한 어르신은 매일 아침 힘들게 등교하는 신평중학교 1학년인 손주와 살고 있다. 아찬리에서 신평중학교로 등교하는 학생은 총 4명, 1학년 2명과 2,3학년이 각각1명씩이다.

아찬리를 경유해 신평으로 향하는 버스는 매일 아침 7시면 정류장에 서고, 7시 이후로는 11시에 지나가는 버스 탓에 아이들은 버스를 놓칠 수 없다. 가끔 버스를 놓친 아이들은 자가용으로 등교하기도 하지만 운전을 못하는 어르신과 살고 있는 아이는 꼬박꼬박 버스를 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초등학교 학생들은 통학차량이 운행되지만 중학교 학생들은 통학차량도 없다.

이 어르신은 “열흘 동안 나가서 지켜봤어요. 버스를 보면 그 시간에 타는 사람도 없어요. 버스운전기사 혼자서 빈 버스를 몰고 동네로 들어와서 우리아이를 싣고 갑니다. 동네에서 10분이면 학교에 도착하는데 1시간이 넘도록 저 혼자서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면 버스가 30분만 늦게 와주면 안 되나 싶은 거예요. 다른 집 아이들은 버스를 놓치면 엄마가 데려다주는데 우리 애는 내가 운전도 못하니까 일주일에 3~4번을 그렇게 혼자서 타고 가는데 늙은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라며 호소했다.

어르신은 버스운전기사, 버스운수여객, 시청, 시의원 등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에 건의해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어렵다, 해드리겠다” 등의 허울뿐인 대답이었다고 답답해 했다.

이에 당진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현재 충남교육청에서는 중학교에 대한 통학차량 지원근거는 없다. 충남 일부 중학교에 통학차량이 지원되고 있지만 그런 경우는 통폐합중학교인 경우만 해당한다”며 “초등학교도 농어촌지역 통합차량 지원개념으로 면단위 학교에 통합차량이 배정 되고 있다. 관내에는 송산중학교가 방과 후 하교용 차량만을 운행하고 있는데 이는 학교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당진여객 역시 난처한 입장은 마찬가지다. 당진여객 관계자는 “시간을 늦추는 건 어렵다. 시간하나 조정하면 전체 버스노선을 다 조정해야 한다. 노선끼리 얽혀있기 때문에 지난 1월과 7월 수정된 노선을 다시 수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청에 문의를 해도 답은 똑같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노선변경이 있을 시에는 고려해보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시청은 어떨까. 좀 더 시민의 편에 서서 생각해주지 않을까. 시청 교통과의 답변은 좀 더 희망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의했다.

시청 교통과 관계자는 “시내버스 운전은 4시간 운행마다 30분씩 휴식시간이 있다. 30분이라는 시간을 미루면 뒤에 버스가 다 밀리게 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어르신의 건의사항에 대해서는 “면사무소를 통해 버스노선 조정신청을 하면 당진여객과 현장에 나가서 노선변경의 조건이 되는지를 검토 하겠다”고 답했다.

덧붙여 “시간 조정자체는 근로시간과도 맞닿은 문제라 쉽지 않다. 변경이 들어간다고해도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린다”고 답했다.

현재 당진시는 67대의 시내버스가 231개의 노선을 하루 동안 840회 운행한다. 2019년 1월 1일부터 근로기준법(근로시간 단축)개정에 따라 버스운전기사의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변경되면서 시내버스의 일부노선은 72회가 감축됐다.

40년 전의 버스노선에 새롭게 신설되는 노선으로 운행된다는 당진시 시내버스, 특히 외곽지역은 어르신의 이용이 많아 시간을 변경하거나 노선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물론 시내버스가 학교 통학차량이 아니며 시민모두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시골동네의 한 학생이 매일아침 홀로 학교에서 기다려온 그 시간에 당진시와 유관기관은 어렵다는 답변보다 조금은 괜찮은 답변을 해야지 않을까. 시골동네 학생도 소중한 당진시민이라는 어르신의 절절한 호소가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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