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아빠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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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진신문
  • 승인 2019.11.09 06:00
  • 호수 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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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당진신문=이해인]

우리아빠는 싱거운 농담을 좋아한다. 곱씹으면 재밌는 농이 많다. 막상 그 자리에선 안 웃기다가도 뒤돌아서면 혼자 키득거릴 때가 많다. 선한 아빠는 농담도 선하게 한다. 하루는 네 식구가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달이 계속 따라왔다. 아빠는 옷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 따라오는 것이라며 싱거운 농을 던졌다. 나는 싱거운 아빠의 농담이 좋다.

싱거운 농을 좋아하는 아빠는 그만큼 무뚝뚝하다. 표현하고 싶어도 어색해한다. 타지에 살고 있는 딸이 보고 싶은 아빠는 엄마에게 자주 물어보는 모양이다.

“해인이 언제온데”

그런데 막상 전주에 가면 시치미 뚝 때고 안 기다린 척 한다. 집안 곳곳에 내가 좋아하는 앙금빵과 바나나, 갈비가 가득한데 내가 모를 줄 아나. 아빠가 냉큼 사다놓은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표현을 못하는 아빠는 한 번도 내게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적 없다. 심지어 전화도 먼저 못하신다. 내가 어색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 아빠의 유전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하지만 언행불일치의 표본인 아빠는 온몸으로 당신의 막내딸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아빠의 딸인 나는 지금까지 불만 없이 행복하다.

그날은 점심때였고 날이 좋아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콧구멍을 크게 벌렸다. 솔솔 부는 봄바람이 내 코를 통해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얼른 핸드폰을 들어보았다. 화면에 ‘아빠♥’라는 문구가 보였다. 놀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아빠가 먼저 전화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라고 부르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 아빠 태안 왔다”

신혼집인 당진에서 태안까지 나름 가깝다고 여겨 전화주신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하고 관광버스타고 놀러왔어, 지금 유람선 타고 있는 중이야”

잔뜩 취한 목소리로 목청껏 자랑하는 아빠가 귀여웠다. 나는 아빠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조심히 놀다 가’라는 끝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아빠는 용기를 내어 다정하게 말했다.

“응 집에 놀러와”

남들이 보면 무슨 대단한 말 한줄 알 것이다. 하지만 아빠를 잘 아는 나는 느낄 수 있다. 딸이 보고 싶은 속마음을 전하기 위해 큰 용기 낸 것임을. 오늘만큼은 무뚝뚝한 딸이라서 죄송하다. 갑자기 아빠의 싱거운 농담이 듣고 싶다. 선한 아빠의 선한 농이 그립다. 밖에서 불어온 봄바람이 내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아빠가 태안에서 보낸 봄바람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