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오피니언] 나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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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진신문
  • 승인 2019.11.02 06:00
  • 호수 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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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루 시민학교 늦게 핀 꽃 자서전 발췌-김기칠

[당진신문=김기칠]

나는 1935년 일제 강점기에 충남 서산군 음암면 성암리 벽촌시골마을에서 전형적인 촌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4살 때 나의 아버지는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서산읍내로 나가 자전거포를 운영했으나 곧 다음 해 내가 5살 때 해방되기 전에 아버지는 일본군대에 징집되어 군대에 가게되어 우리집은 다시 고향집으로 들어가 음암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다음해 우리나라는 일제에서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고 15살 때에야 나는 음암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 내가 내자신을 생각해도 착하기만하게 자랐다. 자라오면서 부모님 속을 썩이거나 애를 태워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그 힘든 절구질로 보리방아를 찧는 것을 보면 내가 어머니의 절구를 빼앗아 땀을 뻘뻘 흘리며 절구질을 하여 어머니의 일을 돕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을 서당에 다니면서 한문공부를 시작했으나 그해 6.25전쟁이 일어났고 전쟁판에 그나마 다니던 서당도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서당을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서당에 다니려면 봄에 겉보리 5말과 가을에 쌀 5말을 학채로 내야하는데 봄에 겉보리 5말을 낼 형편이 못되어 배움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서당을 중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서당에 다니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떼를 쓰기도 했으나 허사였고 서당 중퇴한 것에 대하여는 오래도록 부모님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서당을 중단했으나 나는 공부를 중단할 수가 없어 한자사전인 옥편과 명심보감 책을 구입하여 독학으로 공부를 계속했고 명심보감을 뗄 수가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슨 일이든지 이거 내가 꼭 해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기어코 해내고 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22살 때 서산 인지면에 사는 동갑내기 처녀와 중매로 결혼했으나 결혼 10개월 때에 아내는 임신상태에 나는 군에 입대하여 26개월의 군대생활을 하고 제대하여 내가 군대생활 때에 아내가 남편도 없이 혼자 낳은 첫아들을 보게 된다.

 내가 일생동안 주로 한일은 집짓는 목수생활이었다. 기술자 목수를 만나 목수기술을 배워 한때는 엄청 돈을 벌어 서산에서 당시로써는 몇 채 안되는 고급주택인 양옥집을 내가 직접 지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이리저리 곡절을 겪으면서 모아놓은 재산 다 날리고 고향을 떠나 멀리 경상도 울진가지 가서 대규모 아파트 공사를 맡아 열심히 일했으나 결과는 사기를 당하여 그동안의 내 열정이 허사가 되고 끝내는 내 일생 영원히 잊지 못할 오욕을 치루기도 했다.

 이러한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겪은 스트레스로 60대 중반 서울에 살 때 결국은 위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며 수술을 받게 되었고 경과가 좋아 암에서 해방된 후 그동안 쉼 없이 일만 해온 생활을 접고 건강회복을 위한 휴양생활을 하면서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 자주 나가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거기에 모이는 사람들은 나처럼 별 하는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 눈길을 끈 것은 아코디온, 하모니카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결국 그 악기소리에 매료되어 내 인생의 후반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며 우선 각종 악기를 구입하여 혼자서 독학으로 연습하는데 내 열정을 다 쏟게 된다. 그때에 산 악기들은 지금도 가지고 있으면서 나의 심심풀이 동반자가 되었다. 바로 아코디온, 하모니카 등이다.

그러던 중 70대에 들어서 나는 서울생활을 접고 아무 연고도 없는 당진시 송산면 시골마을에 작은 터를 마련하여 내 손으로 주택을 짓고 내 인생 후반을 보내던 중 내 나이 80이 되니 나의 4남매 아이들이 당진 설악가든에서 내 팔순 기념 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손님도 많이 모이고 지역가수들도 초청하여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이 잔치가 어찌나 흥겨웠던지 설악가든 사장님이 잔치를 이렇게 재미있게 하는 거 처음 보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토록 흥겨운 팔순잔치를 하고 더욱 재미있게 생활한지 2년여만에 지난 60여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그토록 수많은 고초를 견디어 온 아내를 갑자기 발병한 심장병으로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게 된다. 이젠 아내마저 떠나 의지할 곳 없이 방황하던 중 내 인생 후반기를 장식하며 마지막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곳을 찾아낸 곳이 바로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해나루 시민학교다.

나는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여기를 떠나지 않을 작정을 하면서 내 모든 힘을 여기에 쏟을 생각이다. 지금 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80여년의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