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성면 양유리 전 광 재 씨


▲ 불편한 다리로 벌어들인 적은 액수의 월급을 모아 구입한 쌀을 7년간이나 순성면사무소에 기탁했지만, 그 모습이 담긴 사진은 없다.
순성면 양유리에 가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 늘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자신의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나무와도 같은 ‘전광재(63)’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해마다 추석명절이 다가올 즈음, 불편한 다리로 벌어들인 적은 액수의 월급을 모아 그 돈으로 구입한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달라며 순성면사무소를 찾는다는 전광재씨. 형편은 그리 넉넉지 못할지라도 그의 마음과 표정만큼은 더없이 넉넉했다.

몇 번의 전화통화 끝에 어렵게 그를 만난 기자는 순성면 양유리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행동만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를 소개하고자 한다.
손하경 기자 sarang418@hanmail.net


순성면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 이제는 당진에서 모르면…?

굽이굽이 좁은 마을길을 지나니 순성면 양유리 마을회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때마침 회관 입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전광재씨와 마주치게 됐다.
머리 위는 서리가 내려앉은 듯 하얗게 뒤덮여 있고, 얼굴에는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지만 그 뒤로는 기자를 기피하려는 듯한 마음이 엿보였다.


“며칠 전부터 통화했던 기자유? 힘들게 뭣 하러 여기까지 와유. 별일도 아닌 걸 갖고...”라며 조금은 야박스럽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느 건강한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자전거에서 내린 후 회관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쪽 다리를 저는 그는 지체 5급의 장애를 갖고 있다.


“다리가 불편하니까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지. 그게 걷는 것 보다 훨씬 편해.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자전거 탄 모습만 보고 멀쩡한 줄 알더라고...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갑자기 한 쪽다리에 마비증세가 와서... 어릴 때야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나이드니 흉보는 사람은 없어”


그는 시간이 날 때면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마을회관을 즐겨 찾는다. 그 곳에서 이웃주민들과도 절친히 지내고 있다.
회관에 들어서니 이장님과 몇몇 어르신들도 함께 만날 수 있었고, 이 마을에서는 그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칭찬이 자자했다.


이장님은 “우리면에서 저분 모르는 사람 없을거요. 가진 농터도 별로 없으면서 농사진 거 죄다 다른 사람한테 퍼주고, 여기 회관 올 때도 빈손으로 오기 서운해서 그러는 건지 항상 술이라도 한 병씩 사와서 동네 분들과 약주도 하고 그러지요”

▲ 시간이 날 때면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마을회관을 즐겨 찾는다(평소 절친히 지내고 있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고마운 아내의 일품요리 ‘아내표 해장국’

그는 18년간 인근의 기업체 공장에서 경비일을 맡아보고 있다. 불편한 자신을 오랫동안 몸담게 해준 회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불편한 나를 이렇게 오래 다닐 수 있게 해줘서 고맙지. 다른 경비들은 도시락 싸서 다니던데, 나는 회사에서 밥도 주고 일도 그렇게 힘든 거 없어”


아침 7시쯤 집을 나와 20여 분을 걷게 되면 버스정류소가 있다. 그렇게 출근하여 24시간의 일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퇴근을 하면 잠시 눈을 붙이고는 쉴 틈도 없이 작은 규모의 논밭을 아내와 함께 일군다. 그러면서 마을회관에 가시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내가 술을 즐겨해서...(웃음) 시간나면 회관에 가서 동네 사람들하고 술도 한 잔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그러지”


넉넉지 못한 형편 탓에 아내는 집안살림을 하는 틈틈이 품팔이(품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해 주는 일)를 하면서 생활을 꾸리고 있다. 그런 형편으로 남을 돕겠다는 그의 행동에 처음에는 아내와 의견차이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이해하고 따라주는 아내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40여 년간 부부로 살면서 호강한번 못 시켜주고, 못난 남편 만나서 이렇게 고생만 하고 있으니 많이 미안하지. 그래도 꼬박꼬박 새벽밥 챙겨서 출근시켜주는 거 보면 참 고맙지. 더구나 내가 술을 즐겨하니까 술이라도 마시고 오면 꼭 다음날 아침은 해장국을 끓여주고... 하도 해장국을 끓이는 일이 많아서... 해장국집이나 하라고 해야겠어(웃음)”

▲ 혼자 사진찍기 쑥스럽다며 마을이장님을 모셔오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는 ‘나눔이란 열매’가 열려 있다.

그는 불편한 다리로 벌어들인 적은 액수의 월급을 모아 구입한 쌀을 7년간이나 순성면사무소에 기탁했다.
어떤 질문을 하든 ‘그저 당연한 일’이라며 자신의 행동과 생활에 대해 드러내지 않으려고 인터뷰 내내 말을 아끼는 그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면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해마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농협에서 쌀을 사시고, 그 영수증을 들고 오세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바로 문을 나서십니다. 좋은 일 하신다며 사진 한 장 찍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사진찍기를 완강히 거부해서... 아쉽지만 그 모습이 담긴 사진은 없습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드러내고 싶어했을 것이고 그 모습이 담겨진 사진 한 장 정도는 있게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7년간 선행을 해왔음에도 지금껏 사진 한 장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내가 사진찍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뭐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사진까지 찍어. 내가 굶고 사는 것도 아니고, 갖고 있는 거 조금 나누어 줄 뿐인데... 여유있게 살지는 못해도 누군가를 도우면 뿌듯하고 개운한 마음이 들어. 보람도 느끼고... 그래도 내가 아직은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분에 진한 행복을 느끼니까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자신도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나눔으로써 삶의 보람을 찾고 행복을 느낀다는 전광재씨. 이야기를 하면서 주머니에 들어있던 ‘밤’ 네 톨을 기자에게 건네주었다. 현대인들 대부분은 아등바등하며 ‘자기욕심 차리기’에 급급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나누고, 베푸는 마음을 쓰면서도 한사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전광재씨의 모습에서 기자는 훈훈한 기운과 함께 세상 한구석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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