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 미 / 신성학원장. 시인. MBTI심리상담사

아흔 넘은 치매노인을 십여 년 동안 모셔온 삼십 대 실직 부부가 게임 방에서 놀다 죽은 아비의 시체를 한여름 더위 속에 삼일동안 방치해 두었다는 소문이 요란한 기적소리로 세간을 울립니다.
나는 그 사람들보다 불효를 밥 먹기보다 더 쉽게 더 자주 저지르면서도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젯밤, 내가 곤히 잠든 중에 누군가가 우리 집 주방을 다녀갔습니다. 푸-걱 소리를 온몸으로 막으며 냉장고문을 열었을 테고 입정부리 몇 알을 손아귀에 넣을 때는 빈약한 가슴에서 북소리도 났겠지요.


쩝쩝 소리조차 틀어막으며 어둠 속에서 노획물을 삼킬 때는 살아있음이 저주스러워 눈물로 말아먹었을 테고 내일은 이러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도 했겠지요. 나는 내일도 모래도 그 불쌍한 양상군자가 찾아올 것에 대비하여 무엇을 냉장고에 채워둬야하나 하고 고민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딱 한 번 있었던 일인데, 아주 늦은 밤 베란다에서 달빛 부서지는 황홀한 남산을 바라보다 문득 내 방을 누군가가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악, 소리가 잇새로 빠져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푸르게 조각난 달빛이 두려워 아들이 잠든 방이라도 바라보며 위안을 얻으려는 그분의 심정을 아직은 달빛이 곱게만 보이는 젊은 나인지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그 밤의 비밀을 가슴 속에 꼭 꼭 묻어두고 공기가 통하지 못하도록 덮고 가려야지 하고 다짐을 하는데, 가슴에선 방망이가 여러 개 숨어 있다. 두더지 잡기라도 하는지 불쑥하고 한개 씩 치밀어 오릅니다.
생명은 모두 다 소중합니다.

늙었다고 가볍고 젊다고 무거운 것이 아닌데도 나는 자라나는 내 아이의 생명 앞에서는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으면서 그 분의 생명이 너무도 질기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나는 천둥 번개 치는 밤중에도 다리 뻗고 깊은 잠에 몰입할 수 있지만, 새하얀 그 분의 영혼은 쉬이 잠들지 못해 이리저리 해매이다 맑은 날 밝은 빛이 찾아들어서야 아기처럼 곤한 잠을 이룰 수 있답니다. 불효는 참 내 가까이서 서성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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