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4회 나루문학상 우수상-수필] 신의 화분
[2019 제14회 나루문학상 우수상-수필] 신의 화분
  • 당진신문
  • 승인 2019.10.12 06:00
  • 호수 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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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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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연

[당진신문=이시연]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여름, 지인을 따라 서산 다육이 농장에 갔다. 그곳엔 내가 처음 본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제각각 이름표를 달고 손님을 맞이했다. 아기 손톱만한 잎부터 제법 커다란 잎사귀까지 저마다 태양을 향해 뜨거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일반 식물과는 달리 다육이는 태양빛에 달달 볶아야 한단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제 몸에 달린 잎사귀의 수분을 짜내어 생을 이어가게 만들어야 비로소 명품 다육이가 탄생한단다. 동글동글한 잎에 한가득 복이 들어있을 것 같은 방울복낭, 동화책 속에서 걸어 나온 마법사가 걸쳤음직한 보랏빛 의상을 자랑하는 흑법사, 당장이라도 전쟁터에 나갈듯 창 모양을 하고 있는 다육이들이 내 눈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다육이는 키우는 사람의 의지대로 자란단다. 강건하게 키우고 싶으면 척박하고 가혹하게 환경을 만들어 주고 울창하게 키우고 싶으면 물도, 온도도 일정하고 편안하게 해주면 된단다.

문득 다육이를 보면서 나를 세상의 화분에 심어놓은 신을 생각했다. 지금껏 그리 녹록하지 않던 삶이 대부분이었던 내 생의 환경은 신의 의지였을까. 강건하고 세차게 살아가라고. 그래서 그토록 추위, 더위, 목마름에 가둬놓고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때로는 ‘신이시여 이 정도 볶았으면 만족하지 않을까요?’ 하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을 구성한 잎사귀를 말려 눈물이 되도록 쥐어 짜댔다. 그토록 나를 가혹하게 달달 볶아서 당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요즘 들어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인이 골라준 다육이를 우리 집 베란다에 옮겨 왔다. 갈 때마다 하나씩 둘씩 옮겨온 화분이 어느새 여남은 개가 넘는다. 메마른 여름에도 한눈 꾹 참고 물주기를 참아낸 덕분에 찬바람 부는 가을이 되자 이슬만 먹고도 어느덧 통통해진 잎사귀로 나를 기쁘게 했다. 타들어 가는 목마름으로 내 손길을 기다리는 다육이의 안쓰러움을 잘도 참아낸 내가 뿌듯하다. 가을 햇살과 이슬을 먹고 기력을 보충한 다육이들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이젠 추위와 싸움이다. 11월은 그럭저럭 견뎌냈으나 12월 사나운 한기에는 결국 내가 두 손을 들었다. 베란다 밖에서 공중부양 했던 화분들을 안으로 이사시켰다. 그날 밤엔 세찬 겨울바람에도 안도감과 함께 내 가슴엔 훈풍이 도는 듯했다.

한동안 다육이는 거실 밖 유리문 뒤에서 비슬비슬하다가도 내가 가끔 바라보면 힘을 내어 웃어준다. 작년에 실직한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화가 치밀었다. 평생을 받쳐 일해 온 내게 조직은 지켜주지 못하고 밖으로 내몰았다. 한참 동안 그 회사라는 우물 속이 너무 그리웠다. 축축하고 고만고만한 생명들의 우굴거림이지만 그 울타리에서 떨구어졌다는 상실감에 몸서리쳐진 시간이 아팠다.

아마 그 뜨거운 여름쯤이었을 게다. 웅크리고 찌그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크고 깊게 숨을 몰아쉰 것이. 뜨거운 태양을 맨몸으로 참아내고 몸 안의 열정을 다 태우는 다육이를 만나고부터라는 것을. 뜨거워야 목말라야 더 강건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다육이를 본다. 여름의 태양도 가을의 이슬도 그리고 겨울의 서릿발도 견디어야 새봄의 희망을 느낀다는 것을. 다육이도 나도 이 겨울이 마냥 길고 춥다. 물을 참고 추위를 참고 유리문 뒤에서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다. 아침마다 태양이 조금씩 빨리 나오더니 새해가 밝았다. 세상은 아직 눈보라 속에서 떨고 있지만 땅 속 그 어디쯤에서는 새 생명을 피워낼 작은 싹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으리라. 봄 이란 그런 것 같다. 냉정한 얼음을 뚫고 가녀린 생명이 솟아 나온다. 다 죽었다고 생각한 마른 가지에서도 초록을 피워낸다. 검버섯 오른 주름진 얼굴에도 새악시 볼에 핀 부끄러움이 꽃핀다.

신의 정원에서 싹틔워 살아온 나다. 나를 키우고 있는 화분이 큰지, 작은지 아직은 잘 모른다. 그 화분 속의 토양에 영양분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다육이들을 명품으로 만들고 싶어 하듯이 신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걸어가는 앞길이 가시밭길이라고 생각이 들 때마다 신은 더 큰 뜻을 품고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라고 더위, 추위, 목마름에 빠져 아우성쳐도 꿈쩍 않고 나를 위해 참고 계시리라.

새봄이 오면 나의 다육이들도 다시 베란다 밖 공중에 매달아 부양시키겠다. 한겨울을 웅크리고 살아낸 다육이들이 새로운 잎사귀들을 밀어 올리겠지. 뿌리는 더욱 강건하게 줄기는 로마 신전의 기둥처럼 튼튼하게 버티고 있을 것을 희망하면서. 나의 생에도 새봄이 오면 내 인생의 이막도 좀 더 밝게 펼쳐질 것이다. 계획했던 직업도 잘될 것이고 못 다 이룬 심리학 박사과정에 대한 꿈도 현실이 되어 캠퍼스를 거닐 것이다. 힘겹게 나와의 싸움을 견디고 있는 지금, 신께서 바라보신다면 ‘나 여기 잘 있어요, 이만하면 제법 마음에 드시나요?’ 하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