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들판을 건너온 겨울바람의 발목이 하얗다아파트 옥상 비둘기들이겨울의 희디흰 심장을 가르며 날아간다봄이 오면 초록빛 바람이 불 것이다진초록으로 몸을 바꾸면 여름이다가을이 오면 바람은 또 옷을 갈아입는다비둘기들이 날아오를 때마다바람의 빛이 바뀌고 있다약력 시인. 홍성출생. 월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 등단시집: 유월의 숲 출간. 심훈당진문학상. 현 당진시인협회원
단풍 물들 즈음검붉은 연어 떼 몰려들면 남대천 강물이 터진다머슴 장작 패듯꼬리 내쳐 다진모래 산실조용히 내려놓으면야인처럼 무정한 정사빛나게 아름다운 몸짓에서 낳았다는 걸 돌아와서 알았지그 다음,가야 할 아뜩한 길까지
[당진신문] 소들 평야 펼쳐진 솔밭 한 자락순결한 삶과 순교에 서늘함은 음지 볕 슬쩍 올려놓고 달아나는 겨울 빛사목의 아픔은 아직도 노을을 뜯는 솔잎처럼푸른빛으로 관조하고 있다찢겨진 상처 자국 아직도 그대로 인데회화나무 껍질 속으로 파고든 쇠붙이살이 되어 아직도 상흔의 푸른 등줄기 가시처럼서슬 퍼렇게 지느러미 흔들며 펄럭 인다생가 주위를 맴돌며 정지된 동상 앞에 앉아의미를 하나씩 건져 올리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날개를 접고 촉각을 세우던 고추잠자리비애를 끌어안은 듯 한참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주위를 맴돌다 바람결에 어디론가 날아가
아름드리나무를 허공에 세우는 것은줄기가 아니다 땅을 움켜쥔 뿌리다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키우듯암막 같은 어둠이 배경일수록 별들은더욱 또렷한 빛으로 자신을 드러낸다그때의 어둠이 최후의 간증인 것처럼새남터의 칼날까지 십자가로 짊어졌던스물여섯 신부의 보이지 않는 믿음은거대한 뿌리였다 이 땅의 천주교 키운충남 보령 출생. 「동양일보」신인상 등단, '큰시' 동인. 시집 : 『누군가 나를 두드렸다』외
아버지는 평생 종교를 모르셨다벼가 누렇게 익어 수확을 앞 둔 계절억센 비바람 예고 없이 들이쳤다베어놓은 볏단 폭우에 떠내려가듯당신의 흔적 휩쓸려 사라지기 직전아버지는 처음으로 기도했다사십칠 년 동안 걸어온 생을 종양과 교환한 후요한이라는 세례명을 품고 가셨다절반의 삶을 살고 먼 길 발 닿은 그곳 희미한 불빛산과 나무가 잠든 밤에도시간은 태풍의 속도처럼 달려남겨놓은 절반의 심장이 어느덧 당신 떠날 때의 나이를 넘었다밝은 빛만 비추어 달라고 기도한다절반의 심장이 남아 당신의 꿈요한이 이루고자 했던 구도의 길을 멋지게 걸을 수 있도록말없
소나무 우거진 산으로 들어간 기도는 나비가 되었어요그때의 기억과 희망을 알까요나비는 긴 대롱을 잃어버렸고 당신은 아레나에서 붉은 뺨을 잃어버렸어요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깊숙한 울음이 무늬가 된 나무의 몸만 있는 곳잎은 무성한데 이제 당신이 없군요짧은 생을 뜨겁게 살았던 순교자의 고독했던 길오래도록 찬양하는 나비가 생겨났고숭고한 집을 지어 들장미 문양으로 지붕을 덮었죠십자가의 길에는 고해성사하는 나비들이 가득해요가끔 창조의 신과 함께 다녀간다는 당신,어떤 새벽어떤 정오어떤 저녁에도 다녀갔다고 노송이 말해줬어요생의 길을 잃지 말라던 엄마
천국의 뜻을 세우기 위해이 대지 위에 세웠던 걸음들도포 자락 날리며 오가던긴 세월 방조제 뚝 길그 햇빛 찬란히 빛나던 날연호지에 피었던피처럼 붉은 연꽃처럼육신의 허망함을 버리고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을다짐했던 타오르던 그 속마음푸른 산과 냇물은 알았으리라길가에 꽃잎은 보았으리라가볍게 새처럼 영원을 향해이 영혼 하늘로 올라가리라높은 하늘 위에 두었던 뜻마음은 끝없이 아득한 데당신이 걸어갔던그 길을 따라가네.충남 당진 출생‘90 ’농민문학‘ 신인상한국 문인협회원당진문인협회 회원연호시문학회 회장 역임당진시인협회 이사
통통배 잠 깨워 바다로 나가는 새벽조그만 섬 하나 둥둥 떠 있다붉게 피었던 홍등 하나, 둘 갯마을에 잠깨고밤새 정박했던 지느러미 힘차게 흔들며 바다로 나간다고패질에 꿈들이 매달려 올라오고거친 숨 몰아쉬며 갑판에 퍼덕이는 사내의 심장갯벌 파헤치는 낡은 삽질 소리 줄줄이 올라오는 낙지에 허리 끊어지는 줄 모른다밀물 썰물에 몸 헹구던 바지락 소리소금기 얼굴 가득 피어나는 환한 미소가 즐겁다‘17 ’시와정신‘ 등단충남시인협회원, 시와정신 문인회장당진시인협회 이사시집 : 『서해에서 길을 잃다』『우리 밥 한번 먹어요』
수령이 300년 된 나무들도 이슬 한 방울에 푹 젖는 솔숲, 바람의 길목에 친 침엽의 솔그늘이 무량無量한 해먹 같다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솔붓, 자필이 푸르므로숲 그물에 깃든 서사는 순교의 패총,차곡차곡 쌓인 단층이 솔빛 향기로 은은하게 빚은 서책 같다숲 그늘의 갈피마다 서표인 듯 꽂혀 있는 솔가지를 한 장씩 넘겨 읽으면 촘촘하게 그늘로 직조한 바탕체로 쓰여 있는 음성상징어들순례로 편저한 햇빛과 바람이 소나무 가지에 잔잔하다어떤 경전이 이토록 성스러울 수 있을까신앙의 못자리*에서 지핀 개혁으로 솔가지를 한 움큼 묶어 바람을 흠뻑
허공을 가르는 저 손잡초 속에 몸을 세운 외로운 줄기의지 없는 흔들림에 마음이 간다오랜 시간 버려진 언덕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허공에서 한줄기 초록으로 생을 잇는 저 손몇 차례 흩뿌린 빗방울과절망의 허공을 채우는 바람 있어 다행일까좁고 기다란 절벽일지라도한 줌 흙을 의지하여연초록 생명을 무덕무덕 피웠다장마 중에 틔운 숨결 자라지천에 찍은 아기 손톱 같은 희망수백 수천 송이가 모여서 이루는 춤사위란푸른 절벽에 쓴 하얀 시다결코 혼자의 삶이 아닌수천 개의 손을 잡고 쓰는 생명의 시다 이종미충남 논산출생‘08 '지구문학'
솔뫼는 당진 우강의 땅그 곳엔 천주교 한국 최초 신부인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세상에 태어난 곳천주교 신앙에 독실가족으로 대대로계승해 온 가문에 천주교 역사에 문이 열렸다초록빛 강물이 천지에 바람을 부르듯김대건 신부는 천주교 포교활동에 남다르게 역사가 말한 기해박해로순교 당한 아픔은 가톨릭의 역사던가프랑스 신부 모방에 의해 신학생 발탁으로 유유히 천주교리가 남달리 깊어 선교사로 순교정신이 해양을 탔고 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 추대는 한국최초 신부로 하늘의 뜻이자 영광이었네한국에 선교활동은 순탄치 않음에 혹독한국금에 죄를 범하니 한강변
된 서리가 들판을하얀색으로 그림을 그려 놓고밟고 지나가는 곳 마다 풀잎과 지푸라기들이소리내어 울부짖는다오늘 아침 마당에 물이 담겨져 있는 함지박에는옅은 얼음이 수정같이 빛나고 발등에 내려앉은 서리는 눈물지며 사라진다
단단한 줄 알았는데봄바람이 쌀뜨물처럼 솟아오르더니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콘크리트 바닥처럼 굳어버린,쉽게 열리지 않는 한밤중의 기도흔들어대도 채워지지 않는 멀어진 손길맘을 녹여서달을 향해 삭발된 기다림을 붙잡는다.바닷 속을 허우적거리다묻혀버린 시간 속에서도나무이파리 떨어져 서러운 밤강물처럼 흐르다끝나지 않은 겨울바람에 다시 얼어붙었다잠시 흔들려도 바람을 이겨 일어설 수 있는달빛 그리운 밤약력월간 신인상 등단, 「매월당김시습문학상」 '10 「문예사랑」신춘문예 당선, 시집: 『벽에 걸린 세월』'20『아버지의
내 오랜 친구우리 집에 놀러 와서 참외 먹고이불에 오줌도 싸더니우리 오빠와 낯 뜨뜻한 연애하고올케언니가 되었네내 오랜 친구새언니 소리는 절대 안 나와킥킥대는 두 사람 이불 뒤집어씌워두둘겨 패는 시누이가 되었네내 오랜 친구우리 집 식구 된 지 40여 년많이 웃고 많이 울던 시간도 많이 지나세월의 때 묻힐 만도 한데여전히 아름다운 환한 웃음내 오랜 친구뜨거운 찻잔 호호 불어 온도 맞춰오빠에게 대접하는 그 긴 사랑에 감사하다芝雨 이금자(李錦子) 약력월간 「문학세계」 신인상 등단. 문학세계문인회 정회원. 당진시인협회 정회원.시집 『수채화처
당신은언제부터 나를 필요로 했나요무쇠 같던 사람도다리를 다치거나늙어지면 나를 찾지만 약자에겐 호신용으로 그만이고민중의 지팡이로도 크게 쓰임 받는 당신바싹 말라볼품은 없어도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친구삼아의좋게 살아보자구요. 약력‘7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분 당선, 참여문학, 서석문학, 신인문학상. 사)한국문협중앙위원 사) 심훈: 한국인간상록수시인, 사)학전문학관 관장 아시아서석문학 경인지회장. 시향문학회 부회장. 당진시인협회 이사
홀로 세상을 헤쳐 나가시던나뭇지게 진 아버지성난 가슴 달래주는 햇볕 아래 초점 없는 눈길로 서랍 짝을 지키시던 당신의 마음은 짝 잃은 고양이였을까사납게 치달리는 때늦은 겨울바람은 눈치 없이 창을 흔들며 나들이 나가듯 작년에 집 나간 육신 찾아 헤매는장남을 일으켜 세웁니다애써 데우려 밥솥 안에 넣어둔밥그릇에 이슬이 맺혀 주르르들끓어 오르는 화염이 울고 있었다 고일 사람 없어 홀로 바라보니 젖은 식사였나 보다.「한맥문학」 신인상 등단, (사)한국문인협회원, 「현대계간문학」작가회 분과장, 시집 『누름』 출간, 당진문인협회원, 당진시인협회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비 온다는 일기예보가 통 없었다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양산을 쓰고 가는 사람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우산 없이 비를 맞고 가는 사람장맛비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에앞이 보이지 않았다휘청거리는 우산대 꽉 붙잡고잃어버린 길을 찾아 걸었다흠뻑 젖어버린 신발흠뻑 젖은 옷에 온몸이 짓눌렸다그치지 않을 듯 내리던 빗줄기는여름내 달구어진 열기 씻어내어세상이 맑고 시원했다비가 그치고 젖은 신발젖은 우산을 햇볕에 뽀송하게 말렸다약력경북 영천 출생, 본명 정숙자, 계간『18 문학사랑』시부문 신인상, 한민족통일문예대전 시
점점 눈이 컴컴해지고 사물과의 거리초점이 희미해져 감각으로 감지한다아직 다 읽어보지 못한 세상보고 싶은 책미로와 같은 길을 걸어도 봐야하는데예의 없이 내게도 오는 길초연히 받아들이자비록 예전처럼 사물을 또렷이못 봐도 젊은 날열정적으로 무례는 하지 말아야 한다 도수를 높여 써보고안과 바깥에도 같은 세상 일까예전의 그 시력으로 지금은 볼 수 없는 형태도거부할 수없는 삶의 조각들현시점으로 눈을 돌린다 안경으로 주는 세상 나의 가장 중심에 누가 있는 지‘04년《공무원 문학》신인상 등단, (사)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충남문인협회이
꼬부랑 할머니가 입속에 매달려 흔들린다거미줄을 타고 들락거리는 욕망의 늪질겅 질겅 참 잘 어울리는 입오래 씹어야 찰지게 달라붙는 성질머리 부드럽다가도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성격이빨과 입술 사이 구름다리를 타고 건너는 쫄깃함두툼한 살점이 포만감을 부르는 그 곳혀 놀림에도 빠지지 않는 이물질 그녀건져 내기가 불편한 구조라 더 좋다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구토시궁창 냄새가 풍기는 맨홀 뚜껑에 자리한 낡은 방 녹슨 배관을 울리는 검은 소리통로 끝자락에는 마지막 절규가 자라고찍혀 씹히고 부딪쳐 부서진 잔해균형을 잃어 파편이 튀고낡은 뱃속의 벽이
봄 마당에 물기 오른 나의 나무는거짓말을 못 한다솔바람타고오솔길 지나 비탈길 지나진솔한 순리의 길 찾아 뿌리 내리는나무 끝에선 허물을 잊고 있다눈뜨고 잎 피고 맥이 흐르는가지마다 일어서는 시청각의 흔적들촉각을 세우는 세련된 나무들과 숲죽어서도 나의 나무는거짓말을 못 한다나무는 진솔하기 때문이다이유가 없어서 칭얼대지도 않았다약력90년 월간「문학세계」「시와 시론」시와 소년문학」동시조 등단, 시집 : 『겨울나기』『붉은 무지개 외 전 20권 ’20충남도문화상, 충남문학대상, 세계시문학상, 한밭아동문학상, (사)한국문협 자문위원, 국제PEN